지난 콘텐츠에서 해외 유명 카로체리아 기업이 디자인한 국산 자동차를 살펴보았었다. 이번에는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 알아보려 한다. 이제는 국내에도 자동차 디자인 커리큘럼을 보유한 대학교는 물론 영국 왕립예술학교(RCA), 미국의 아트 센터 디자인 대학교(ACCD) 등 유학의 길도 열려있어서 한국인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많이 생겨났고 더 나아가 한국인 혹은 한국계 디자이너들이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이 디자인 한 자동차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들을 모아봤다.
범블비부터 플라잉 스퍼까지,
이상엽
이상엽 디자이너는 카로체리아 기업 피닌파리나와 포르쉐에서 인턴 활동 후 GM, 폭스바겐, 벤틀리에서 근무하다 현재 현대자동차 디자인 센터장(전무)으로 활동하고 있다.
먼저 이상엽 디자이너하면 꼽을 수 있는 스포츠카는 쉐보레의 6세대 콜벳이다. 콜벳은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카다. 롱 노즈 숏 데크의 비율과 바디 라인은 5세대와 비슷하지만 헤드램프, 범퍼, 캐릭터라인 등 중요한 요소들의 디자인이 크게 바뀌어 5세대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풍긴다. 그러면서도 콜벳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4구 테일램프는 6세대에도 그대로 살려 호평을 받았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범블비’로도 잘 알려진 쉐보레 카마로 역시 이상엽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영화의 흥행은 이상엽 디자이너를 대중적으로도 알리는 계기가 됐다. 5세대 카마로는 사라졌던 1세대 카마로의 라인을 되살렸으며 동시에 미래적인 느낌까지 공존해 과거의 디자인을 재해석하는 그의 능력을 한번 더 입증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영국의 럭셔리 브랜드, 벤틀리에서도 활약했다. 그의 대표작은 플래그십 모델인 2세대 플라잉스퍼였다. 그의 손길에 의해 플라잉 스퍼는 1세대에 비해 더욱 당당해지고 기품이 넘치는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이 플라잉 스퍼는 벤틀리가 한국 시장에서 당시까지 역대 최고 실적을 올리는 데 기여했다. 덕분에 2015년 대한민국 전용모델인 플라잉 스퍼 코리아 에디션의 디자인까지 맡았다.
2010년대 중반, 대 SUV 시대를 거스를 수 없었던 벤틀리에서도 자사 최초의 SUV를 만들기 위해 프로젝트를 추진했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인물 역시 이상엽 디자이너였다. 벤테이가를 끝으로 그는 해외에서의 디자이너 활동을 마무리 짓고 현대자동차로 자리를 옮겼다.
30대의 로망 BMW 4시리즈 쿠페,
강원규
강원규 디자이너는 2001년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자동차 제조사의 인테리어 디자인 부서에 입사했다. 그러나 자신의 디자인을 좀 더 표현하고 싶었던 강원규 디자이너는 퇴사 후 아트 센터 디자인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생활 중 캐나디안 모터쇼 디자인 대회(Canadian Motor Show Design Competition)에서 포드의 클래식 카 모델 T를 2015년형으로 새롭게 디자인 해 3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이 후, 졸업전시회에서 미국 BMW 디자인웍(Designworks) USA 자동차 부문장 크리스토퍼 채프먼의 눈에 띄어 BMW의 뮌헨 본사로 입사하게 되었다. 크리스토퍼 채프먼은 BMW X시리즈의 쿠페를 디자인했다.
강원규 디자이너가 작업한 BMW 4시리즈 쿠페 콘셉트는 2013년에 출시한 4시리즈의 근간이 되었다.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4시리즈가 디자인되었고 쿠페, 그란쿠페, 컨버터블 3가지 모델별로 범퍼와 휠의 디자인이 다르게 적용되었다.
S클래스와 SLR 스털링모스에 담긴 진심,
메르세데스 벤츠 윤일헌
윤일헌 디자이너는 해외 제조사에서 몸담은 한국인 디자이너 중 몇 안 되는 순수 국내파 디자이너라 할 수 있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4학년으로 재학 중이었던 2003년에 메르세데스 벤츠를 포함한 다수의 해외 유명 자동차 메이커에 포트폴리오와 함께 지원서를 보냈다. 얼마 뒤, 메르세데스 벤츠로부터 입사 통보를 받았으며 그가 입사한 곳은 콘셉트카를 주로 디자인 하는 메르세데스 벤츠 어드밴스드 디자인 스튜디오였다. 이후, 메르세데스 벤츠는 2005년에 열린 도쿄모터쇼에 전시한 F600 하이지니어스(Hygenius)를 보고 그를 독일에 있는 본사로 데려왔다.
본사로 이직 후, 2007년에 윤일헌 디자이너는 중대한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바로 벤츠 SLR시리즈프로젝트였는데 SLR 시리즈 중에서도 최종판으로 꼽히는 ‘스털링 모스’의 익스테리어 디자인을 맡게 된 것이다. 원작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2년간 20여차례에 걸쳐 영국과 독일을 오가며 끊임없이 엔지니어들과 조율을 해나갔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땐 수시로 오리지널 300 SLR이 전시되어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9세대 S클래스를 꼽을 수 있다. 역대 S클래스 중 가장 고급스럽고 유려한 디자인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다양한 첨단 사양이 대거 적용된 모델이다. 현행 모델인 9세대 S클래스는 대형세단의 표본이었던 S클래스의 위상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며 명실상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뿐만 아니라 벤틀리에서도 외장디자인팀 경력이 있는 윤일헌 디자이너는 현재 현대 제네시스 디자인실 실장을 맡고 있다.
콜벳과 카마로에 한번 더 한국인의 손길을 입힌
이화섭
이상엽 디자이너의 5세대 카마로의 후속인 6세대는 카마로는 이화섭 디자이너가 빚어냈다. 5세대보다 더욱 날렵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를 날카롭게 디자인하였으며 보닛의 라인 또한 날렵한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일조했다. 2015년 북미에 출시했으며, 2016년에는 한국GM을 통해 국내에도 정식으로 출시하였다.
이화섭 디자이너의 손에서 탄생한 7세대 콜벳은 스팅레이라는 펫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2세대 콜벳을 오마주한 것이다. 곡선이 많은 전 세대 모델에 비해 직선을 많이 사용하여 공격적인 모습으로 태어났다. 외관에 걸맞은 성능도 화제였는데 기본형만으로 3.7초만에 정지상태에서 100km/h에 도달하는 성능을 갖췄다. 7세대 콜벳은 엔진이 앞에 있는 마지막 모델이기도 하다.
4도어 쿠페의 전성시대 연 2세대 CLS ,
휴버트 리(이일환)
쿠페형 세단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CLS는 출시와 동시에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1세대 CLS의 등장으로 4도어 쿠페라는 개념의 시장이 열렸고, 이후 아우디 A7, BMW 6시리즈, 포르쉐 파나메라 등 쟁쟁한 경쟁 모델들이 등장했다. 2세대 CLS는 이러한 경쟁 구도를 통해 확장된 시장을 다시 한 번 선도할 차종이 필요했다.
이 중책을 맡은 것은 한국계 미국인 디자이너인 휴버트 리(한국명 이일환)였다. 그는 1세대의 바디라인을 계승하되 볼륨감 넘치는 펜더와 돌출된 라디에이터 그릴로 더욱 역동적인 디자인을 구현했다. 이런 변화는 전 세대를 디자인한 마이클 핑크와의 배경 차이에서도 알 수 있다. 마이클 핑크의 경력에서 쿠페가 중요한 줄기를 형성한다면, 휴버트 리는 F800 콘셉트카에서 볼 수 있듯 남성적인 외관을 지향했다.
2012년에 출시한 벤츠 M클래스는 휴버트 리의 디자인 지향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명확한 사례다. 그는 M클래스의 한국 출시 행사에서 깜짝 출연해 M클래스의 디자인에 대해 짧게 소개하기도 했다. M클래스의 옆면을 보면 2세대 CLS의 캐릭터 라인이 적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휴버트 리는 현재, 중국에서 베이징 디자인센터를 총괄하고 있다.
안전을 넘어 디자인 볼보로!
XC60의 이정현
이정현 디자이너는 2017년에 출시된 2세대 XC60의 메인 디자인 진행을 맡았다. XC60은 볼보자동차의 베스트셀러이자 유럽 중형 프리미엄 SUV 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달성한 모델로 볼보의 중심 모델이었기에 2세대 XC60 프로젝트는 볼보의 모든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그리고 이정현 디자이너의 프레젠테이션을 본 볼보 디자인 총괄자, 토마스 잉엔라트는 “지금까지 내가 상상한 XC60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라는 말과 함께 이정현 디자이너에게 XC60 메인 디자인 진행을 맡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