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 월별 신차 출시 대수는 평균 5~6대 수준이었다. 그러나 2020년 10월에는 무려 15대에 육박하는 신차가 출시됐다. 상반기 침체됐던 자동차 시장이 뒤늦은 기지개를 켜는 과정인 듯하다. 여러 매체들이 다급히 부응했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댓글로 화답했다. 기사의 일부분인 듯 당연해 보이는 댓글들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그 돈이면’이라는 조건 문구다.
‘그 돈이면’이라는 말은 가격의 상대성을 드러낸다. 상대성이 생기는 이유는 가치 때문이다. 가치는 맥락에 의해 생겨난다. 맥락은 재화와 사람의 관계,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입장과의 관계다. 입장은 사실적이면서도 심리적이다. ‘그 돈이면 이 기사에 나온 신차가 아니라 다른 차를 사겠다’는 말이 틀리진 않지만 어딘지 감정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더군다나 온라인 공간은 익명성이다. 이름이 감정이라는 짐승을 가뒀던 케이지라면, 댓글의 공간은 투우나 투견장이다. 짐승의 싸움에 인간의 규칙이 통할 리 없고, 그런 곳에서 룰과 윤리를 이야기하면 ‘씹선비’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이런 현상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감정적 배설 출구가 막힌 사회는 더 깊이 병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 돈이면’이라는 댓글은 소비 주체들이 가진 심리의 그림자 혹은 사실적 입장의 반영이다. ‘그 돈이면’을 외치는 모두가 같은 이들은 아니겠지만 그 목소리를 겹쳐보면 공통적으로 파악되는 소리가 있다. ‘나의 선택이 지지 받기를 원한다’, ‘나의 선택이 옳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다.
이는 다름 아닌 인정 욕구다. 인정은 ‘투쟁’을 통해 얻어야 할 정도로 인간의 욕구 중 둘째가라면 서러운 강도를 자랑한다. 사람은 소비하는 대상에 자신을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 ‘그 돈이면 이 차다’라고 하는 말을 치환하면 ‘그 사람을 선택할 요량이면 차라리 내가 낫다’라는 말로도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인정 욕구를 단순히 현 시점의 일자리 부족과 상대적 박탈감 증가로 귀인하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되 진부하다. 정확하게 2020년의 한국 사회에 들이대기에는 초점이 맞지 않는 렌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 노화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저성장 국면과 초고령화라는, ‘늙은 사회’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변수보다는 상수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노화한 사회는 처음 생겨난 것이 아니다. 문명 초기 신정 사회는 원로의 힘이 막강했다. 원로의 늙음은 지혜로 간주됐다. 그 지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사람은 질서로부터 배제되거나 추방당했다. 언어학자인 월터 옹은 이런 신정 사회의 특성을 암기와 전승으로 이어지는 구술 및 비문자 문화의 특성으로도 해석했다.그리고 그것은 문자 문화에 의해 밀려났다고 봤는데, 흥미롭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점점 문자 문화보다는 비문자적인 것의 힘이 강해지고 있는 시대다.
그런 점에서 나의 소비적 선택이 보다 다수에 의해 인정받고 지지되며, 다른 선택지에 비해 보편적인 우월성을 지니고 있다고 인정받는 것이야말로 심리적 생존의 과제다. 이걸 인정하고 나서 보는 ‘그 돈이면’이라는 메시지는 차라리 절규로 돌아온다.
배설은 자신의 의지를 통해 그 양과 정도를 조절할 때 배설이고 정화다. 그걸 못하면 실금이다. ‘그 돈이면’으로 끝나는 이야기면 배설이겠지만 거기에 이어 오는 너무나 많은 말들은 괄약근의 고장처럼 여겨진다.
글
한명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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