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오픈에어링 GT, 렉서스 LC 500 컨버터블

지난 429, 잠실 커넥트 투 뒤편 잔디밭에서 렉서스 LC 500 컨버터블 포토세션이 진행됐다. 5.0리터 V8 자연흡기 엔진, 실내외 모두에 극단까지 적용된 렉서스 특유의 디자인 큐, 17,800만 원에 달하는 가격은 이 차에 대한 선호도를 가르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본 차는, 그림이나 몇 가지의 숫자만이 아니라 적어도 실물로 평가받을 자격은 충분해 보였다.

렉서스의 오이란,
LC 500 컨버터블

LC 500 컨버터블은 가히 렉서스의 오이란(花魁)이라 할 만하다. 아무에게나 기회를 주지 않는 높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 자체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이란은 흔한 기생이 아니라 에도 시대 요시와라 공인 유카쿠 전체에서 지체가 가장 높은 존재였다. 손님도 고를 수 있었다. 술자리에서는 그 손님보다는 상석에 앉았다.

무엇보다 아름답다.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렉서스가 지향하는 아름다움의 정수를 갖고 있다. 전장 4,760, 휠베이스 2,870㎜로 그리 큰 차체는 아니지만 유려한 선으로 제원 이상의 길이감을 만들어낸다. 21인치 직경의 크롬 휠은 오이란도츄(오이란 행차의 화려한 행렬) 시 하치몬지(팔자걸음)를 선보이는 오이란의 대형 하이힐인 타카게다를 연상시킨다.

렉서스 특유의 날 선 L 피네스가 극단화된 주간주행등 디자인은 오이란 화장의 눈꼬리를, 채도 높은 도장은 오이란도츄 때 입는 아름다운 비단옷을 연상케 한다. 오이란은 유카쿠 여인들에게만이 아니라 에도 시대 여염 여인들은 물론 고위층 여인들에게도, 패션에 관한 한 롤모델이었다. LC는 콘셉트카 LF-LC를 거의 그대로 빚어내놓은 차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는 그만큼 렉서스가 지향하는 미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LC 500 컨버터블은 어쩌면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인연을 기다리는 자동차라 하는 것이 적합할지도 모른다. 분명 17,800만 원이라는 가격의 다른 멋진 선택지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이 차 역시 그 돈이면 다른 차를 사겠다는 이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자신을 진정으로 원하며, 여유를 갖춘 누군가에게만 모든 것을 내줄 준비가 돼 있는 그런 차다.

볼수록 특이한 제원,
이것이 GT 타입 컨버터블이다

렉서스에서 LC는 퍼포먼스 라인업으로 분류되고, LC 500 컨버터블의 국내 출시 때도 스포츠카라는 키워드를 사용했지만 엄밀히 이 차량은 퍼포먼스 지향이라 보긴 어렵다. 물론 477ps의 출력을 발휘하는 5.0리터 V8 자연흡기 엔진의 존재감은 크지만 4.7초 수준의 0100km 가속력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최근 출시 차종들 중 퍼포먼스라 명함을 내미는 차량들은 대부분 4.0리터 미만의 엔진으로도 3초대 0100km/h 가속력을 발휘한다.

물론 퍼포먼스가 단순히 직진 가속력만으로 정의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운동 성능은 어떨까? 아직 시승 경험이 없지만 해외 매체들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고속 코너링에서 좌우 하중 이동이 절제되어 있으며 부드러운 감각을 자랑한다는 것이 주요 외신들의 평가다.

타이어의 경우 여느 퍼포먼스 차종보다는 단면폭이 좁다. 전륜은 245㎜로 전장과 휠베이스가 조금 짧은 RC F에 10㎜ 모자란다. 후륜은 275㎜로 RC F와 동일한 수준인데 2톤이 넘는 하중을 감안하면 이 역시 조금 좁아 보인다.


아름다운 오픈에어링 GT, 렉서스 LC 500 컨버터블
참고, 렉서스 RC F

렉서스 측은 서스펜션 하부 공간을 확보하고 현가 장치 각 부품의 경량화를 통해, 실제 거동에 영향을 주는 부분의 불필요한 관성 모멘트를 줄였다고 한다. 코너링 시에는 아무래도 LC 쿠페보다는 외륜 쪽의 눌림이 있는데 그마저도 기분 좋을 정도의 감각이라는 게 렉서스 측의 변. 해외 미디어 관계자들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한다. 전체적인 섀시의 유연성과 함께 어떤 경우에도 마찰력을 놓치지 않는 후륜 서스펜션 및 후륜 차축 주변부 섀시의 강성 확보가 비결이다.

마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만 있다면 상대적으로 단면폭이 좁은 타이어는 구동 소음이 적고 승차감이 상대적으로 우수할 수 있는 조건이다. 실제 현장에서 시동을 걸었을 때 들어 본 것이나 영상을 통해 느껴지는 5.0리터 V8 엔진의 사운드는, 포효나 폭음과는 거리가 먼 부드러운 울림 같았다. 자동변속기는 다이렉트 시프트 10단인데 시프트 다운 시 엔진 구동음과 배기음이 뿜어져 나오는 타이밍도 섬세하게 조절됐다. 시승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뭔가 흥분을 자아내기보다는 차의 노래를 들으며 유유자적 달리는 맛이 상상된다.

유유자적이라는 표현이야말로 LC 500 컨버터블의 가치를 잘 말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달리기 실력을 갖췄지만 이 차는 스포츠카라기보다 GT 성향의 컨버터블이다. 탑을 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기는 오픈에어링, 그걸 원하는 사람에게 적격이다. 초 단위를 쪼개는 트랙 주행처럼 차를 몰아붙이고 싶은 이들에게는 맞지 않는다.

탑을 열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비교불필요의 베블런재

LC 500 컨버터블의 매력은 당연히 덮개를 열고 있을 때 드러난다. 측면에서 볼 때 벨트라인을 따라 이어진 차체 전체의 실루엣이 매력적이고 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어떤 것이라도 아름답게 보일 만하다. 상대적으로 소프트탑을 닫았을 때 탑의 실루엣이 드라마틱하지는 않다. 탑의 수납 부분이 차체와 분절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고자 노력했지만, 탑을 닫고 있을 때 측면 실루엣은 차체 전체에 표현된 예리한 선들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탑의 컬러는 블랙과 샌드 두 가지로, 미국 판매 사양과 동일하다.

국내 시장에 판매되는 컬러는11가지다. 커뮤니케이션 컬러인 네이플스 옐로 컬러로 포토세션 현장의 메인 차량이다. 인테리어 컬러는 은은하고 따뜻한 느낌에 대시보드, 시트, 뒤쪽 데크가 이어지는 일체감이 매력적인 오커 렉서스의 화려하고 열정적인 면을 담은 플레어 레드, 스포티한 감각의 고채도 블랙 세 가지다. 참고로 탑 컬러를 샌드로 선택한 경우는 오커만 선택할 수 있다.

상징적 이미지를 만드는 나이트폴 미카(블루) 컬러와 화이트 세미 아닐린 가죽 시트의 조합은 북미 사양에서도 빠졌다. 국내에서 살 수 있는 블루 컬러는 딥 블루 미카로 거의 비슷한 고채도의 금속성 블루 컬러다.

사실 이런 저런 면을 따지고 들면 LC 500 컨버터블은 경쟁급 차종에 비해 큰 메리트는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차는 완벽한 베블런재다. 만족을 느끼며 구입하는 사람에게는 값이 얼마여도 상관없는 차, 철저한 자신만의 스타일로 양보할 수 없는 사치에 기여하는 작품. LC 500 컨버터블은 모든 차가 합리와 정의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환상을 우아하게 거부한다.

글·사진
한명륜 기자

자료협조
렉서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