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를 탈 수 있는 이들이라면, 컨버터블 자동차 구입에 대한 고민을 한 번은 해봤을 것이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어떤 음악소리보다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들리는 여름의 파도소리, 가을 단풍 사이로 별처럼 빛나는 햇볕, 심지어 한겨울의 매운 공기까지 오픈에어링이 주는 경험은 특별하다. 그러나 의외로 컨버터블을 구입한 이들 중 빠른 시간 안에 차를 팔고, 다시는 컨버터블을 쳐다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컨버터블과 어울리지 않는 성격, 자동차 생활 패턴 8가지를 정성적으로 꼽아 보았다. 여러분 중 컨버터블 구매 계획이 있는 이라면, 몇 가지나 해당되는지 체크해보는 것도 좋다.
1. 완두콩을 못 견딘 공주님
안데르센의 동화 중, ‘공주님과 완두콩’은 독특한 상류층 감별법에 관한 이야기다. 12장의 담요에도 그 아래 있는 콩 한 알의 압력이 거슬려 잠을 못 이뤘다는 아가씨와, 그 말에 신분을 확신하게 돼 며느리 삼기까지 했다는 성주 부부의 이야기인데, 어찌 보면 풍자기가 다분한 내용이다.
그런데 컨버터블은 의외로 당신 안에 내재한 그 공주님을 끌어낼 수도 있다. 컨버터블은 지붕을 들어올리는 장치들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견고함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유연성도 필요한 부품들이어서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뒤틀림은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소리들이 날 수밖에 없다. 서비스센터에서는 높은 확률로 ‘원래 그렇다’고 할 것이고 당신만 잠을 못 이룰 것이다.
물론 그 소리가 실제 고장인 경우도 있다. 주요 컨버터블들의 경우 시속 40~50km/h까지 탑 오픈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그걸 진짜로 자주 했다가는 탑 개방과 관련된 여러 부품들에 부하가 크게 걸린다. 특히 약간이라도 경사나 곡률이 있는 도로일 경우 부품에 가해지는 부하가 불균형해지면서 고장을 일으킨다. 심지어 창문조차도 곡선로나 경사로에서 여는 것을 지양하라고 권할 정도다. 이를 무시할 경우 그 잡소리는 정상 범위를 넘어서는 고장의 신호가 된다.
2. 알러지성 천식 환자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컨버터블을 구입해봤자 다른 컨버터블 유저들이 탑을 오픈하는 시간의 반의 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최근 컨버터블 차종들은 차량 내로 공기가 쏠려들어오는 걸 막을 수 있는 유체 역학적 설계가 돼 있다. 문제는 주행 속력이 아주 느릴 때다. 이 때 앞에 갑작스럽게 흙먼지를 날리는 덤프 트럭이나 지독한 매연을 뿜는 노후 경유차 혹은 정비 불량 차량이 있다면 답이 없다. 봄철 꽃가루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이 유형의 운전자가 탑을 열려면 미세먼지와 꽃가루가 없는 초여름 날씨, 차가 없는 평일의 간선도로에서나 가능하다.
3. 곤충 포비아
에어로다이내믹 설계 상 벌레 역시 주행 중에 차량 안으로 인입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이것도 저속 주행이나 정차 시가 문제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차 안으로 벌레가 들어오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작은 모기 정도야 퇴치제 등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다지만,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나방 정도라면 운전자가 놀라서 스티어링을 급조작할 수도 있다.
4. 내추럴 본 허당
생활 습관 자체가 꼼꼼하지 못한 이들은 컨버터블을 타면서 본의 아니게 남에게도 민폐를 끼치고 스스로도 다칠 위험이 있다. 쿠페와 마찬가지로 B 필러가 없는 대부분의 컨버터블은 ‘문짝’이 강성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보통 차보다 문의 무게가 무겁다. 또한 도어 길이가 길다 보니 개방 시 반경도 크다. 승하차 시 일반 세단이나 SUV라면 등받이 정도의 위치에서 내릴 수 있지만 쿠페나 컨버터블은 그보다 뒤로 내려야 한다. 만약 일반 세단과 비슷한 위치로 내릴 경우 도어 개방 반경이 커지는데 이 때 문콕 사고도 날 수 있다.
또한 측면 시야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 사각지대가 넓다. 덩치가 큰 컨버터블 차종들의 경우 이런 위험이 더 크다. 예컨대 E-클래스 카브리올레의 경우 전장만 4,800㎜가 넘고 휠베이스가 2,873㎜, 전폭이 1,860㎜에 달한다. 그런데 통상 도어 미러에서 기준점이 돼 주는 2열 도어 손잡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후방 카메라가 있지만 이것도 만능은 아니다. 따라서 일반 차량보다 조심해서 운전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조심성이 부족하다면 자잘한 생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5. 와인딩이 좋은 자연인
제아무리 스포티한 차종을 기반으로 하고, 고성능 파워트레인과 서스펜션을 장착했다 하더라도 컨버터블은 격렬한 와인딩에 어울리는 차라고는 할 수 없다. 일단 동급의 쿠페보다 공차 중량이 무거워 선회 시 좌우 바퀴의 하중 이동이 크다. 반응성이 우수한 에어서스펜션은, 어떤 의미에서 더 큰 문제다. 주행 시 운전자는 몸의 쏠림을 잘 못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견딜 수 있는 부하는 한정돼 있다. 탑을 여닫는 부품들도 마찬가지다.
포르쉐 박스터처럼 엔진의 위치를 미드십으로 하고 탑에 관련된 부품 무게를 최소화하거나 타르가 탑처럼 별도의 지지 구조가 있는 차종이라면 그나마 버틸 수는 있다. 페라리나 맥라렌의 고성능 스파이더는 실제로 개폐되는 탑이 차량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좁고 그래서 해당 부품의 중량도 가볍다. 물론 가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일반적으로 세단을 베이스로 한 준대형급 이상의 컨버터블로 이런 와인딩에 자주 나선다면 필연적으로 고장을 자주 경험할 수밖에 없다.
6. 타인지옥설 신봉자
세계 최고 골퍼 중 한 명인 브룩스 켑카는 뛰어난 성적에 비해, 광고 실적 등의 면에서는 저평가받는다. 그건 그가 그런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골프로서만 말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팬 서비스에 소홀하지도 않으나, 브라이슨 디섐보나 필 미컬슨처럼 미디어에 먹이를 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미디어 노출이 필수인 장비 후원 계약조차 받지 않는다.
하물며 일반인들은 어떠하랴. 타인의 시선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끔 시승 촬영을 하다가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을 만나면, 일면식도 없는 내게 사진을 부탁하며 포즈를 취하는 경우도 있으나 자동차를 탄 이들은 카메라의 존재 자체를 무척 경계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개방된 공간에 자신을 드러내는 태도 자체는 곧 타인의 시선에 대한 정서의 온도를 의미한다는 걸 알려주는 사례다.
애초에 이런 사람들이 컨버터블을 구입할 가능성은 제로다. 그러나 우연한 호기심은 역사도 바꾸는 법. 난데없이 이런 이들도 컨버터블을 구매할 수는 있다. 물론 빠른 시간 내에 되팔겠지만.
7. 시간 자린고비
1분 1초도 아껴서 생산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도 컨버터블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컨버터블은 특별한 고장이 아니더라도 자주 체크해줄 사항들이 많다. 탑과 윈도우가 제대로 맞물리는지, 무거운 공차중량으로 인해 휠 얼라인먼트가 틀어지거나 서스펜션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등은 자주 체크할수록 돈을 아낄 수 있는 항목이다. 그러나 촌음의 시간도 허투루 쓰는 게 싫은 시간 자린고비들에게, 컨버터블은 열린 탑 너머로 시간을 날려버리는 물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8. 카푸어족
물론 할부에 모든 것을 기대야 하는 카푸어족에게는 어떤 차든 사실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컨버터블은 더하다. 시간 자린고비와 비슷한 이유일 수 있는데, 컨버터블은 유지 보수에 드는 시간과 비용 모두가 일반 차량에 비해 많은 편이다. 특히 탑과 에어 서스펜션 관련 부품들의 경우, 정비 횟수도 잦고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탑은 불행히도 소모성이 강한 부품이다. 외부 충격에도 약하다. 컬러가 있는 탑은 물이 빠지며 보기 흉해지기도 한다. 여기에 아주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개폐에 관련되는 장비들이 고장을 일으킨다.
승차감을 위해 적용되는 에어서스펜션의 경우 더 가관이다. 특히 컨버터블은 차량이 무겁기 때문에 서스펜션에 가해지는 하중이 크다. 문제는 한 바퀴의 에어 챔버가 고장을 일으키면 나머지 세 바퀴의 챔버가 보상 동작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모두 손상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거의 신차가격에 육박하는 수리비용이 발생한다. 워런티 기간 안이라도 필시 ‘운전자의 습관 영향이 있으므로 전액 책임 수리는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기 십상이다. 어찌어찌 할부금은 갚을지 모르지만 이 경우는 차를 처분도 못 하고 타지도 못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버터들이 주는 쾌감만은 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위에 언급한 유형의 운전자들도 컨버터블을 한 번 경험해 보면 주행 중의 자유로움만큼은 부정하기 힘들다. 다만 한 번의 경험과 그 경험을 일상으로 들여놓는 것은 다른 묹제다. 혹여 큰 돈이 생겨 컨버터블을 알아보고 있다면 이 유형 중 자신은 어느 정도 해당되는지 한 번 짚어보는 것도 좋겠다.
잠깐! 컨버터블이 위험할 것 같아서 안 산다면?
세계적인 학술 출판사 테일러 앤 프랜시스(Taylor & Francis)가 발간하는 <교통 상해 예방(Traffic Injury Prevention)>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충돌 사고를 분석했을 때, 사고 1만 건당 운전자 사망자 수는 컨버터블이 11.5명, 일반 차량인 12.6명이었다. 주행거리 100억 마일 당 운전자 사망 건수도 컨버터블이 47.1건, 일반 차량 57.9건이었다. 전복 사고에서의 운전자 사망 건수 역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고가 걱정돼서 컨버터블을 사지 않는 유형이라면, 위의 유형 중 다른 유형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