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당나귀 2마리가 강남 일대에 ‘밤마실’을 나와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들의 밤 외출은 이번이 네 번째라고 한다. 신고 5분 만에 무사히 ‘포획’되어 집으로 돌아간 이 당나귀는 의외로 시민들에게 환영받았다. 멧돼지처럼 날뛰지도 않았고 시민들과의 셀카 촬영도 너그럽게 허해서 꽤 나 인심을 얻은 듯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말산업실태조사’(2021년 3월 기준) 자료에 따르면 당나귀의 전국 사육 두수는 577 마리다. 해당 자료엔 서울에서의 사육 두수가 기록되지 않았으니 최소한 2마리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당나귀는 주로 제주에서 만나봤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의외로 최대 사육지는 강원도와 경기도다. 참고로 암말과 수탕나귀의 종간 잡종인 노새는 전국에 12마리밖에 없다.
당나귀란 동물은 의외로 한국인에게도 친숙하다. 당나귀는 중국에서 들어온 나귀라는 말인데, 사실 그 역사가 오래됐고, 토종 나귀와의 교배 역사도 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도 『삼국유사』에 실린 신라 경문왕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나귀와 당나귀는 동일한 존재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라는 동요가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물론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게 대숲에 외쳐야 할 정도인 걸 보면 이 경우엔 당나귀가 그리 긍정적인 상징으로 보이진 않았던 것 같다. 경문왕은 자신의 귀가림 모자를 만들던 복두장의 저주가 걸린 대숲을 밀어버렸다. 바람만 불면 영 이상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대신 심은 게 남자에게 참 좋은데 말하기 어렵다는 산수유나무였다. 긴 귀과 왕이란 지체높은 신분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란 건 동서 고금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목동의 신 판과 아폴론이 음악 대결을 벌였을 때 목동의 손을 들어줬다는 이유로, 아폴론이 미다스 왕의 귀를 당나귀 귀로 만들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나귀는 고집스럽다는 이미지도 있다. 나귀가 인류와 함께 한 건 기원전 4,000년 전부터라지만 모든 나귀 종이 쉽게 가축화된 것이 아니었다. 영리한 만큼 꾀도 많다. 소금 나르기가 싫어서 개울에 일부러 빠지자 주인이 솜을 실어 참교육했다는 우화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인간이 나귀라는 종을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귀는 말보다도 지구력이 강하다. 사람 키만한 짐을 등에 진 채 차마고도 험로를 움직이는 당나귀의 행렬, 아프리카 빈국의 벽돌 공장에서 지게차를 대신하는 나귀의 모습 등은 나귀의 압도적인 운송력을 증명한다. 지친 표정 덕분에 가엾어 보이기도 하나, 강인한 체력을 자랑한다. 거친 먹이를 탓하지 않고 이동 중에 사람 눈엔 보이지도 않는 돌틈 풀뿌리를 캐서 먹으며 허위허위 험로를 걸어간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본 것처럼 한국에서도 옛적부터 효율적인 운송 수단이었다. 경문왕 설화로 보아 적어도 통일 신라 시대 이전에 중국에서 당나귀가 들어왔고, 그 이전에도 자생 나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집 세다고 했지만 의외로 위험을 인지하고 피하는 능력이 있어서 결국 사람과 짐을 다 보호하는 재주가 있었던 셈이다.
당나귀는 비교적 근세까지 운송 수단으로 한국인과 함께 했다. 앞서 언급한 동요 ‘맴맴’의 가사는 1898년, 『미국 민속학보』에 실려 세계에 알려졌다. 그러고 보니 K 팝 전도의 초기 사례다. 1960~70년대에도 당나귀 혹은 나귀가 끄는 수레는 운송 수단으로 흔했다.
‘파워트레인’으로서 말은 고출력이지만 그만큼 먹이의 양과 질이 모두 확보돼야 한다. 소는 고토크 저출력으로 장거리 이동보다는 경작용에 더 어울렸다. 그에 비해 당나귀는 말과 소의 장점을 두루 갖추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북한에서는 당나귀가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참고로 이 동요는 아버지가 나귀 타고 장에 간 후 건넛마을 아저씨 댁에 간 사람이 할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인 버전도 있다.
어쨌든 당나귀를 실물로 본 한국인들은 이제 드물다. 이미지 검색을 통해 당나귀를 찾는 게 빠르다. 크리스천이라면 예수님의 자가용으로 익숙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 강남 한복판에 등장한 당나귀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사라져가고 있음을 문득 생각하게 한다.
최근 대배기량 엔진 차량을 종종 시승했다. 지금 이들은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한다. 각종 규제를 통해 철퇴를 맞고 퇴장할 예정이다. 물론 전동화를 혐오하는 이들도 만만치 않게 존재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시대의 변화를 이겨낼 순 없을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더 지나서, 서울에서 사육되는 당나귀 두수만큼 줄어버릴 대배기량 머신의 밤나들이도, 강남에 나온 당나귀처럼 연민의 눈길을 받을 수 있을까? 강남 거리의 당나귀는 식당 주인의 반려동물이라고 한다. 새로 개발될 e-퓨얼(합성 탄화수소 기반 대체연료)에도 노킹 내지 않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 역시 짧은 시간 안에 집으로 돌아가라는 신고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