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10년의 약속 푸조·시트로엥·DS 홍보대행 종료 소식

종교인인 한 지인은 결혼식 주례 때 ‘검은 머리 파뿌리’, ‘백 년 해로’ 대신에 ’10년 단위 재계약’한다는 마음으로 살라는 덕담을 건넸다. 일단 종교인이 성스런 결혼식을 ‘계약’에 비유하니 일단 좌중은 웃음바다가 됐지만 알고 보면 좋은 말이 아닐 수 없다. 서로를 클라이언트처럼 존중하면 그 이후 ‘재계약’도 쉬울 것이라는 의미다. “대략 다섯 번만 재계약하면 그 담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을 테니, 계약 기간 내 잘 하시라”라는 말에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연말이 되면 많은 홍보에 이 전시들이 클라이언트와 이별하고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 계약이 종료되는 경우 주요 출입 기자들에게 메일을 보낸다. 물론 동종 업계의 다른 클라이언트를 유치할 수도 있으니 그 기간이 짧더라도 자신들과 접하지 않는 기간 동안 잊지 말라달라는 당부다. 그러나 한 브랜드에 대한 대행 이력이 오래된 경우, 인간적인 감상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10년 정도라면 그 브랜드와 업무를 진행하며 이런 일 저런 일 다 봤을 것이고 그 사이에 미운 정 고운 정도 다 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해당 브랜드의 메시지를 미디어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좋은 기사로 연결되게 하려 연구하고 공부한 실무 담당자들은 서운한 마음에 술 한 잔이 생각날 수도 있다. 

푸조와 시트로엥, DS 홍보를 대행하던 에이전시가 대행 종료 메일을 보냈다. 자그마치 10년이다. 그 사이에 세 브랜드는 부침을 겪었다. 푸조는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3,000만 원대, 연비 좋은 디젤 차, 개성 있는 스타일의 디자인이라는 가치로 젊은 수요자들에게 어필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 국산차가 빠른 제품 주기 갱신을 통해 고유의 강점이었던 영역에서 적극적인 추격과 마케팅전을 펼쳤고 기존 프리미엄 브랜들이 엔트리 라인업을 확대하며 하방 인력을 발휘했다. 2010년대 말부터 2020년대에는 점점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의 세가 강화됐다. 그 과정에서 푸조를 포함한 구 PSA 그룹의 세 브랜드는 글로벌 위상과는 달리 조금씩 힘을 잃었다. 

물론 2017년 이후 신형 3008, 5008과 같은 SUV와 전기차 라인업이 투입되며 다시금 존재감을 알렸지만 2020년엔 COVID-19 및 반도체 부족 등으로 인한 글로벌 제품 수급난이 발목을 잡았다. 그럴수록 국내 임포터가 마케팅에 쓸 수 있는 비용은 줄어들었고 브랜드 담당자들과 홍보인원들은 제한된 자원 속에서 더 나은 경험을 미디어 관계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고민은 깊어졌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행사들이 적지 않다. 2019년 2월, 제주에서 진행했던 세 브랜드 경험을 위한 테마 시승회가 있었고, 같은 해 4월에는 한국 유저들의 입맛에도 맞을 만한 중형 SUV C5 에어크로스 미디어 시승회를 가졌다. 탄탄한 조향의 기본기에 ADAS 완성도, 여기에 비단결 같은 승차감은 아직도 즐거움으로 기억된다. 

2017년과 2019년의 서울모터쇼에서는 이미지 메이킹에서도 브랜드 가치를 잘 살리는 한편 한국인들이 원하는 세련미를 잘 보여줬다. 가격 때문에 판매가 쉽지 않을 게 분명하지만 브랜드 가치를 상징하는 차종인 DS7 크로스백과 관련된 다양한 마케팅도 인상적이었다. 오너들을 초청해, 글로벌 미쉐린 8스타의 거장인 야닉 알레노의 코스 요리를 경험케 한 것, 배우 조여정을 앰배서더로 선정해 마케팅을 진행한 것도 과감한 결단이었고 브랜드의 가치를 올리는 데 기여한 일이었다. 

어느 브랜드와 에이전시인들 그렇지 않으랴마는, 이 세 브랜드의 경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말 브랜드와 에이전시가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두 회사에 남아 있던 담당자들도, 거쳐간 담당자들도 모두 기억에 있다. 

사실 홍보업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요즘은 그나마 덜하지만, 매체를 명함에 걸었다는 이유 하나로 상식선에서의 공명심을 넘어선 언행과 태도를 보여 주는 이들을 적지 않게 봤다. 일부겠지만 그런 이들은 에이전시 담당자에게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았다. 국도를 규정 속력의 두 배로 달리다가 목적지를 지나치고선 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을 탓하고,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타박하는 유아적인 이들도 있었다. 명함에 박힌 매체명만 걷어내면 그들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는 매개 산업이다.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주요 산업이 존재하지 않으면 존속될 수 없는, 심한 표현으로 기생 산업에 불과한 것 아닌가? 더군다나 소식을 전하는 역할은 SNS나 영상 플랫폼에 한참 못 미친다.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허명에 기댄 주제에 겸손할 줄 모르는 이들을, 에이전시 담당자들은 천사나 보살의 마음으로 대해 주었다. 그들의 급여에,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비용까지 들어가 있진 않다. 

이 세 브랜드의 마케팅은 스텔란티스 코리아가 진행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구 PSA 그룹이 FCA를 인수한 모양새지만 국내에선 그림이 묘하게 반대가 돼 있다. 어찌 됐든 브랜드가 국내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홍보 대행 종료 소식이 그에 준하는 서운함으로 다가오는 건, 10년이라는 시간의 물리량 때문일 것이다. 모두의 건승을 기원하며 2021년을 보낸다. 삼재(三災)에 드는 내 걱정이나 하자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브랜드건 에이전시건 내 주제로 걱정할 이들은 아니니까.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