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관계자로서 접하는 페라리는 절망의 벽 뒤에 있는 존재입니다. 소유와 지식은 다른 문제라는 말로 포장되지 않는, 오너에게만 보여 주는 세계가 페라리란 브랜드에는 존재하기 때문이죠. 단순히 주행했을 때 동력 특성이나 거동 특성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왜 나왔고 그 이유를 만든 브랜드 가치의 실체가 뭔지, 시간을 들여야 알 수 있는 경험은 오너에게만 허락되기 때문입니다.
1월 20일, 페라리가 자사 최초의 V6 엔진 기반 PHEV 슈퍼카 296GTB를 공개했고, 그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이 차는 2021년 5월, 글로벌 온라인 미디어 컨퍼런스로 공개됐고 8월 미국 페블비치에서 열린 콩쿠르 델리강스에서 실물을 드러냈습니다. 8월의 페블비치란 천국이었을 텐데, 대한민국에서는 대뜸 대한 추위를 맞이하게 됐네요. 물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실내였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페라리 디자인
3차원 네이티브의 디자인
페라리의 신차는 아무리 새롭다고 해도 헤리티지에 대한 존중이 있습니다. 2021년 6월, 온라인을통해 296GTB를 처음 소개할 때도 역시 1960년대 베를리네타의 간결함과 기능성이 모티브가 됐다고 페라리 측은 전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물결치는 듯한 차체의 면처리도 1963년형 250LM의 헤리티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96GTB의 디자인은 레퍼런스가 된 헤리티지와 근본적으로 달라 보입니다. 실물로 보고 느낀 것이지만 이 차의 면 처리는 3차원 네이티브입니다. 마치 2차원의 스케치를 채 거치지 않고, 상상 속의 입체를 바로 현실로 만든 것 같은 느낌입니다. 4,565mm의 전장 2,600mm의 차체면은 비구상 조형처럼 일렁임이 느껴집니다. 보닛 좌우의 볼륨은 풍만한데 , 페라리 엠블럼과 양쪽 헤드라이트 사이 면은 길게 잘록 들어가 있습니다. 바람이 최소의 저항으로 빠르게 지나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자세히 보면 각기 다른 방식, 다른 방향으로 설계된 면이자 선인데, 하나의 차 안에서 다차원적으로 어울려, 서 있어도 달리고 있는 느낌을 전합니다.
시선을 측면으로 돌려 갈수록 다양한 면모가 보입니다. 3/4 전측면에서는 프론트 상부의 깨끗한 선과 날렵하면서도 부드러운 헤드램프가 이룬 조화가 멋집니다. 그와 아울러 움푹하게 들어간 에어덕트는 먹이를 향해 헹엄치는 상어의 주둥이를 닮았습니다. 더 시선을 돌려 측면으로 가면 좌우 측면 에어덕트로 들어가는 길이 확실하게 나 있는 도어 패널이 보입니다. 미드십 차량들의 측면 선은 캐릭터라인이라기보다 바로 이 공기의 길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새로운 컬러인 이몰라 레드의 감각은 이러한 매력과 시너지를 이룹니다. 이몰라 서킷에서 딴 이름인데, LED 조명 아래서는 진한 핑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기존 페라리의 레드가 주는 묵직함과도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한편 이 차는 포뮬러 원 머신의 느낌도 담았습니다. 전면 범퍼 하단의 모습과 아랫면은 포뮬러 원 머신의 T-트레이를 응용했습니다. 가운데는 홈이 있는 특이한 구조인데 그 안쪽에 전방 센서가 있습니다. 이이 덕분에 에어 덕트는 좌우 상하폭은 넓고 가운데가 좁아 자연스럽게 분리된 형상입니다.
2,600㎜의 짧은 휠베이스
짧은 것이 기술이다?
세대를 거듭해 신차가 나올 때마다 제원은 커졌습니다. 페라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불과 10년 전 현재 페라리 차종과 그 선대 차종을 비교해봐도 알 수 있죠. 하지만 296GTB는 다릅니다. 휠베이스가 2,600mm인데, 1999년에 등장한 360과 동일한 수치입니다. 전장은 4,565mm인데 488보다 약간 짧습니다.
미드십 V6 엔진을 기반으로 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이니 가능한 구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엔진 뱅크 하나가 없다고 해서 엔진을 얹고 무게 배분을 하는 일이 쉽진 않았을 겁니다. 최대 7kWh가 넘는 용량의 리튬 이온 배터리와 구동 모터도 결합해야 하는데 오히려 V8 엔진을 얹는 것 이상의 어려운 패키징이 따랐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구조는 V8 엔진 기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인 SF90 스트라달레로부터 얻은 자신감이 기반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오버행은 길고 휠베이스는 짧은데, 배터리며 모터가 빼곡하게 들어간 차로 기존 페라리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운동 성능을 구현한다는 과제, 그리고 그 과제를 풀어나간 집념과 자존심이 이 레이아웃에는 녹아 있는 듯합니다.
아직 엔진 소리는 영상으로밖에 접하지 못했습니다. 이 차의 배기음을 두고 페라리는 피콜로 V12(Piccolo V12)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하는데, 그만큼 고주파 대역의 소리는 잘 살리면서도 V12의 부드러운 회전감까지 재현했다는 의미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배기 계열에 663ps의 최고 출력 발휘 범위는 8,000rpm이지만 최대 회전수는 8,500rpm입니다. 이러한 사운드를 위해 페라리는 인코넬(Inconel®)이라는 합금 소재도 채용했습니다. 니켈을 기본으로 하고 크롬 15%, 철 6~7%, 티타늄 2.5%, 알루미늄・망간∙규소 1%를 더한 내열합금강입니다. 900℃의 이상의 열에도 견딜 수 있죠.
296 GTB는 2022년 중반부터 글로벌 주문 고객들에게 인도한다는데, 아마 올 여름쯤엔 강남대로에서 이 소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쉬운대로 페라리가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영상의 사운드로 대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