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브랜드 히스토리, 실험과 모험의 아이콘

전 세계에는 다양한 자동차 제조사들이 존재합니다. 각 자동차 제조사들은 오랜 시간을 이어오며, 자사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수 많은 자동차들을 출시해왔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짧게는 수 십 년에서 길게는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명맥을 이어온 자동차 제조사들의 역사를 재조명해 봅니다.  이번 시간의 주인공은 ‘BMW’입니다.
 
자동차에 문외한이더라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자동차 제조사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BMW는 벤츠, 아우디와 더불어 독일의 3대 자동차 제조사라 불린다. BMW BMW 브랜드 외에도 MINI’롤스로이스등 다양한 브랜드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와 자동차가 되다

BMW의 엠블럼이 항공기 프로펠러를 형상화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 칼 라프와 구스타프 오토의 바이에른 항공기 엔진 공장(BFW; Bayerische Flugzeug-Werke)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독일군의 전투기 엔진을 주로 만들던 그들은 성장 산업인 자동차로 눈을 돌렸다. 칼 라프는 1917년 바이에른 모토렌 베르케(Bayerische Motoren Werke)라는 설비회사를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이 때부터 회사의 약자를 딴 BMW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패전으로 끝났다. 1919년 독일과 승전국들이 맺은 조약인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은 무기의 연구 개발, 생산은 물론 수송도 금지 당했다. 당연히 항공기 엔진은 만들 수 없었다. 칼 라프의 선견지명이 적중한 셈이다. 대신 BMW 1923년 모터사이클인 R32 제작을 시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BMW 모터사이클의 아이콘이기도 한 수평대향 엔진의 전설이 시작된 것이다. 실린더가 양쪽으로 누워 있기에, 피스톤이 마주보며 움직이는 모습이 권투 동작과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박서 엔진이라 불렀다. 이는 추후 프랑스 시트로엥의 2CV 엔진에도 영감을 주었다.
 
BMW의 첫 번째 자동차는 1929년에 제작된 딕시(Dixi). 747cc 직렬 4기통 엔진에 프론트십후륜구동(FR) 방식을 택한 이 차는 최고 15ps를 발휘한 소형차였다. 이 차량은 오늘날 미니의 본관이라 할 수 있는 영국 오스틴 모터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그 기술로 만들어진 자동차이기도 하다. 딕시는 1차 대전 후 막대한 전쟁배상금에 의한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미국발 세계 대공황 속에서도 BMW를 지켜낸 힘이 되었다. 1920~1930년대는 소형차 시장의 전성시대였던 까닭이다. 1928년 인수한 아이제나흐 자동차공장(Fahrzeugfabrik Eisenach)에서 생산된 딕시는 1929년까지 생산되었다.

1930년대, 독일 경제는 암흑기로 치닫고 있었으나, BMW는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성장을 지속했다. 328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자동차다. 2.0리터(1,971cc) 가솔린 엔진에 4단 수동변속기를 가진 이 자동차는 최고 출력 80ps(5,000rpm)를 발휘했으며, 최고 속도도 150km/h까지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성능을 바탕으로 3281936년에서 1940년 사이에 120개의 레이스에서 우승했다. BMW의 스포티한 이미지는 이 때 확립되었으며, 328을 통해 명차 브랜드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328 2011년 오마주 콘셉트카로 다시 선보인 바 있다.


BMW 브랜드 히스토리, 실험과 모험의 아이콘
328컨버터블

1939,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BMW는 다시 나치의 군수물자 생산에 동원됐다. 이 과정에서 나치는 전쟁 포로 등을 강제 노동에 동원했고, BMW는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2차 대전 역시 독일의 패전으로 끝났고, 연합군은 BMW의 공장을 그냥 두지 않았다. BMW1948, 다시 R24라는 모터사이클을 출시하며 생산을 재개할 때까지 가동을 중지당했다.

위기와 극복의 끝없는 반복

1951 BMW가 전쟁 이후 처음으로 생산한 자동차는 501이다. 501은 전쟁 이전에 만들어진 326이 진화한 모델로, 전장 4,730, 휠베이스 2,835㎜의 중대형 자동차였다. 여기에 세단과 카브리올레, 쿠페로 트림을 갖춰 고급 자동차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파워트레인도 1,971cc, 2,077cc의 직렬 6기통 엔진과 2,580cc V8엔진에 4단 수동변속기를 결합한 모델로 나뉘어 선택의 폭이 넓은 고급 자동차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당시 전후 복구에 여념이 없던 독일 국민들은 대형차인 501모델에 대한 구매력이 없었다. 전범국 기업이었기에 수출길도 요원했다. 결국 501모델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BMW 브랜드 히스토리, 실험과 모험의 아이콘
501 컨버터블

BMW는 어떻게든 살아나야 했다. 이 때 등장한 자동차가 실용성에 기반을 둔 모델인 이세타(Isetta)였다. 이제타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제조사인 ISO의 소형 삼륜 트럭에서 기술 라이선스를 얻어 생산한 모델이었다. RR(리어 엔진, 후륜 구동) 타입의 이 자동차는 236cc의 배기량과 500kg에 불과한 공차중량 그리고 3l/100km라는 연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제타의 엔진은 하나의 챔버를 두 개의 실린더 룸으로 나누고 그 안에 각각 하나씩의 피스톤이 들어가는 싱글 스플릿 구조였다. 이후 BMW는 이제타의 배기량을 늘리며 꾸준한 생산을 거듭했고, 전 유럽에 수출되면서 BMW를 세계에 알리는데 일조했다. 그럼에도 BMW는 점점 더 재정적으로 불안정해졌고 파산 위기 직전, 경쟁사인 벤츠에 매각 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BMW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1959BMW의 주주 중 하나인 독일의 기업가 헤르베르트 크반트(Herbert Quandt)BMW의 주식을 사들이며 경영난을 타개하기 시작했다. 애초에는 그도 다임러 그룹에 BMW를 넘기는 데 찬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을 바꿔 막대한 사재를 내놓았다. 이유는 베일에 가려져 있으나, 그가 BMW의 기술이 견고한 자본이 되어 재기의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믿은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BMW1961년 프랑크푸르트 오토쇼 IAA(Frankfurt Auto Show IAA)에서 스포츠 세단 1500을 발표하며 성공을 거뒀다. 1500 1.5리터(1,499cc) 4기통 엔진에 4단 수동변속기를 조합한 파워트레인으로 최고 출력 75ps를 발휘했다. 또한 엔진 회전 수 역시 6,000rpm까지 올릴 수 있었고, 정지 상태에서 100km/h에 도달하는 데 15초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가속 성능도 선보였다. 이 때를 기점으로 BMW는 우수한 품질, 콤팩트함과 운전의 재미를 바탕으로 한 개발에 힘을 쏟았고, 경쟁사였던 벤츠와 색다른 방향으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기 시작했다.
 
1966년에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기존의 1500의 성능을 높인 1600을 출시했다. 이후 02시리즈의 첫 모델인 1602가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다시 활기를 띠게 된다. 02 시리즈는 양산차 최초로 터보 과급 방식을 채용한 자동차로, BMW 2016년 이를 오마주한 콘셉트카를 공개하기도 했다.

1970년대, BMW의 진정한 중흥기

BMW1970년 에버하르트 본 쿠엔하임을 새로운 회장으로 영입했다. 그는 23년간 회장직을 수행하며 BMW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그 문을 연 모델이 1972년 출시된 5시리즈였다. 이후 1975년에는 3시리즈, 1977년에는 7시리즈의 세단 라인을 발표했다. 또한 1976년부터 1989년까지 생산되다가 2003년부터 다시 등장한 6시리즈는 기존의 스포츠 쿠페와는 다른 독보적인 감각의 디자인을 갖고 있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BMW 하면 떠올리는 한 자리수 숫자의 모델명은 1970년대에 구축된 것이다. 특히 3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700만대 이상이 판매 되며 BMW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견디는데 큰 힘이 됐다. 또한 미국 젊은 소비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미국 시장에서도 입지를 굳혔다.

다음 100년을 바라보다

BMW도 다른 회사를 인수하고 몸집을 불리는 데 집중했던 시기가 있었다. 1994년 영국의 로버 그룹을 인수했고 1998년에는 영국의 롤스로이스마저 사들이며 외형을 키웠다. 하지만 로버 그룹은 BMW가 기대한 만큼 많은 수익을 내는 회사가 아니었다. 결국 BMW는 미니(MINI)를 제외한 로버 그룹의 나머지 브랜드를 매각했고, BMW와 미니, 롤스로이스 이렇게 3개의 브랜드만을 소유하게 됐다.
 
2000년에 들어 BMW는 회사의 덩치를 키우는 대신 비전을 다른 방향으로 구체화했다. 2000년대 중후반, BMW의 공장과 회사 건물을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는 체험 시설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2007년에는 본사와 공장이 있는 뮌헨에 BMW 벨트(Welt)를 설립했으며, 라이프치히에도 같은 기능을 가진 BMW 센트럴 빌딩을 건립했다. 특히 라이프치히 센트럴 빌딩은 지난 3월 타계한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설계로도 유명하다. BMW는 단순히 자동차를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재정의하는 존재라는 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같은 독일 브랜드이지만 메르세데스 벤츠가 최적화된 기술만을 채용해 안정적인 차를 생산하는데주안점을 둔다면, BMW는 모험과 실험의 아이콘이다. 전기 자동차 산업에 있어서도 기존 브랜드 중 가장 발빠르고 혁신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도 BMW, 전기차인 i3 i8은 테슬라와 전기차 산업의 양강구도를 이루고 있다.

3 7일 열린 BMW의 창립 100주년 행사에서, BMW의 회장 하랄드 크루거(Harald Kruger)우리는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다가올 미래의 100년을 바라본다. 프리미엄 이동수단으로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BMW가 격변하는 세계 자동차시장에서도 여전히 큰 존재감을 갖고 지금까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