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와 포르쉐, 거대기업들이 IT에 돈보따리 안기는 이유?

자동차 산업은 매일 첨단 이슈가 넘쳐날 것 같지만, 의외로 매우 보수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늘 혁신을 외치지만 조직이 크고 복잡한 경우가 많아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기업의 안정성에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가 새로운 흐름을 놓쳐 위기에 처하기도 하니 일견 딜레마에 빠지기 쉬워 보인다. 그러나 정말 관망할 때와 나아갈 때를 가리는 기업은 승자가 된다. IT 이슈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자동차 분야의 일류기업들이 해당 이슈에 대응하는 방식을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포르쉐 디지털의 주차장 스타트업 투자

도심에서의 주차난은 비단 서울만의 일이 아니다. 여유롭고 느린 삶을 즐길 것만 같은 유럽인들도 대도시에 거주하면 주차난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상이다. 실제로 베를린이나 파리 같은 도시에서 거주했던 이들의 경험에 의하면 오히려 서울보다 더 정교한 주차 실력이 필요하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실제 한국에서도 그렇듯 구석구석에 남는 주차공간들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는 이미 이를 이용한 주차공간 공유 시스템 및 이와 연동하는 어플리케이션이 주목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이런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한 공유 시스템과 어플리케이션 개발 및 운용 기업들이 있다.
 
독일의 이보파크(Evopark)는 대표적인 주차장 공유 시스템 운영 기업이다. 이보파크의 운영자인 토비아스 바이퍼는 독일 대도시 운전자들의 30% 가량이 주차장을 찾아 헤매지만 실질적으로 주차 공간은 남아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이 점에 착안해 2014년부터 이보파크를 시작했다. 그는 명문 사립 WHU 오토 바이스하임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젊은 경영자로, 빠른 의사결정과 트렌드에 대한 민첩한 대응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2014년 독일 쾰른에서 시작한 이 사업은 이미 독일 16개 도시, 30여 개소 이상의 지상 및 지하 주차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세계적 사업망을 가진 주차장 사업자들과 긴밀하게 협력 체계를 구축할 정도로 수완이 뛰어난 인물이다.


PSA와 포르쉐, 거대기업들이 IT에 돈보따리 안기는 이유?
이보파크의 CEO 토비아스 웨이퍼(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보파크는 주차장의 하이패스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이보파크 카드와 주차장의 입·출차 시스템을 연동시키는데, 가입자들은 주차장 출입이 자유로운 것은 물론 요금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또한 자동차 안에 단말기를 설치하는 방식이 아니므로, 복수의 자동차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비어 있는 주차장의 위치를 알려주는 기능도 있다.
 
포르쉐의 자회사 포르쉐 디지털은, 이보파크의 사업 분야, 최고 경영자의 분위기를 비롯한 발전 속도 높이 사 30%의 지분을 인수하는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포르쉐 디지털이 이 금액을 정확히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1,000만 유로 이상으로 알려졌다. 포르쉐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보파크 측과 개발한 공동 프로모션 프로그램을 통해 포르쉐 및 아우디 오너들로 하여금 오는 9월까지 이보파크 주차장 1시간 무료 이용 혜택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이보파크와의 협업을 통해 포르쉐가 겨누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서비스 간의 연결성이 향후 스마트 모빌리티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 그리고 그 연결을 통해 미래에도 어떻게 최고의 위치를 유지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포르쉐는 이러한 사안들을 IT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을 통해 검증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그 첨병 역할을 맡은 것이 자사인 포르쉐 디지털이다. 이들은 스타트업 기업에 자금을 대는 벤처 캐피털에, 자신들의 자본금을 풀어 가능성 있는 기업을 찾아내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포르쉐가 자사 내에 조직을 신설하고 비즈니스를 테스트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고 리스크도 적다. 또한 스타트업 측으로서는 성장에 필요한 자본금을 지원받을 수 있으므로 일단 윈윈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프랑스 IT 업계에선 PSA가 ‘혜자’?

PSA 그룹의 IT 기술 관련 전략은 포르쉐보다 훨씬 구체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물인터넷을 이용하는 커넥티드 카의 개발 전략만 봐도 그렇다. PSA 그룹은 안전의 개선운전자의 비용 절감개인 생활의 여유 증진차량 유지의 용이성 제고라는 커넥티드카 개발 전략을 설정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IT 기술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비영리 컨소시엄으로부터 오픈 소스 기반의 개발 도구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시스템의 개발 비용을 합리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오픈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에 있어 가장 큰 장점은, 전통적 제조사의 영역에 속해 있는 기업으로서는 쉽게 친숙해지기 어려운 IT 스타트업 및 기술 인력들과 강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PSA 역시 벤처 캐피탈을 통해 IT 관련 첨단 비즈니스 영역과 모빌리티 부분의 실험을 맡아 줄 젊은 피들을 찾아 왔다. 그리고 PSA의 눈에 든 기업도 포르쉐 디지털이 투자한 것과 조금 비슷한 공유를 테마로 한 IT 스타트업이다. PSA, 장기 여행객들이 공항에 주차해둘 때 발생하는 엄청난 주차요금에 부담을 느낀다는 사실에 착안, 이들의 자동차를 렌터카로 활용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 수익을 여행객과 배분하여, 여행객은 주차요금의 절반 정도만을 부담하면 되는 혜택을 보게 된다.
 
트래블러카의 최고경영자도 젊은 기업가다. 튀니지 출신의 엔지니어이자 보안 전문가인 아메드 미리라는 인물로, 그는 공유라는 다소 추상적 가치를 실질적인 사업적 이익으로 구체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트래블러카 역시 2012년에 설립한 후 유럽 6개국에서 10만 명의 이용객을 유치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PSA와 포르쉐, 거대기업들이 IT에 돈보따리 안기는 이유?
트래블러카의 아메드 미리 CEO(가운데)

PSA는 아메드 미리에게 무한한 매력을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PSA는 새로운 모빌리티와 비즈니스 간의 연결성을 (트래블러카를 통해)가장 빠르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기업 간의 투자와 리턴은 냉정한 비즈니스 관계지만 현재 PSA가 벤처 캐피털 업체에 약 1억 유로에 달하는 금액을 맡기면서 찾아낸 을 충분히 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이 움직이고 유럽이 긴장한다?

포르쉐와 PSA는 유럽 지역내 1, 2위를 다투는 체격의 자동차 제조사다. 하지만 성격은 조금 다르다. PSA가 절대적으로 자동차에 집중하고, 연관 산업이라도 자동차와 관련된 것들에 투자한다면, 포르쉐는 마치 한국의 재벌과도 같은 분위기를 보인다. 실제 포르쉐는 포르쉐 디지털 뿐만 아니라 부동산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방향이 어찌 되었든, 두 기업 다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 기업들은 숱한 위기를 헤치며 오늘의 위치에 올랐다. 그만큼 아무리 멀리 있는 위기라도 그 냄새를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들은 유럽의 역외(域外) 세력들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아성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걱정하고 이에 대해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직접적으로 관계는 없을 수도 있지만, 최근 삼성전자가 FCA의 부품 협력업체인 마그네티 마렐리를 30억 달러에 인수하기 위해 협상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그네티 마렐리는 파워트레인 뿐만 아니라 IT 기술이 적용된 텔레매틱스 및 자동차 내 엔터테인먼트 기능에 사용되는 전자 부품 등을 생산하는 회사다. 삼성으로서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사업 분야를 갖고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당장 전세계 5위 규모의 자동차 회사이자, 재계 라이벌인 현대자동차그룹 주요 계열사의 주가가 요동쳤다. 물론 과거 르노에 완성차 업체를 헌납하며 완성차 시장에서 물러났던 삼성인 만큼 자동차 산업에 섣불리 다시 뛰어들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그러나 전망은 전망일 뿐이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면, 이런 식의 시도는 분명 PSA나 포르쉐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자동차라는 존재에 있어서는 PSA와 포르쉐가 가진 기술을 무화시킬만큼 강력한 라이벌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PSA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조건에서 최대한의 청정함을 구현하고, 포르쉐는 출력과 구동 시스템의 첨단화를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라는 산업의 게임이 바뀐다면? 근본적인 변화를 생각해야 할 시기에 IT 기업들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PSA와 포르쉐가 IT 기업에 돈보따리를 푸는 것은 그들의 미래에 대한 보험일지도 모른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