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1일, 서울 대치동의 DS 오토모빌 전시장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제 9번째 시즌을 맞는 포뮬러-E 출전 팀이자 가장 많은 시즌 우승 기록을 갖고 있는 팀인 DS 팀 테치타의 감독과 선수들이 서울 E-PRIX(E 프리)를 앞두고 미디어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국내엔 생소하지만 그래도 전기차 버전의 포뮬러 원 대회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포뮬러-E 서울 E-PRIX는 8월 13일과 14일 양일간 15~16 더블 라운드로 진행됩니다. 포뮬러-E의 대부분 대회는 상설 트랙 기반이 아닌 도심 서킷입니다. 서울 대회 역시 잠실종합운동장 옆 유휴 부지를 이용해 만든 도심 서킷에서 진행됩니다. 전장 2.618km, 22개의 코너가 있습니다. 주초에 내린 폭우도 있고 비 소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선수들이 어떤 전략을 취할지도 궁금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대회가 빠른 전동화를 보이고 있는 한국의 모빌리티 비즈니스와 자동차 생활환경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요?
지속가능성과 양산 전기차
선수와 브랜드가 함께 고민하는 포뮬러-E
이 날 미디어 간담회에서 강조된 메시지는 어느 정도 예상된 부분이었지만 ‘지속가능성’이었습니다. 제이크 아우만 스텔란티스코리아 사장은 물론 두 명의 드라이버인 장 에릭 베르뉴와 펠릭스 다 코스타 두 선수도 이 가치를 매우 중시했습니다. 선수들이라 레이스 이야기만 할 줄 알았는데 드라이버들부터 ‘지속가능성’이라는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핵심적인 존재라는 걸 자각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희들은 레이서이기 때문에 빠르게 달리고 우승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궁극적으로 지속가능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E-RPIX에서 얻은 경험이 양산차에 적용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하죠. 그래서 향후 DS 오토모빌의 새 전기차를 접하는 고객들이 그런 점을 느끼실 수 있게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2017/2018, 2018/2019 시즌 드라이버 챔피언이자 현재 포뮬러-E에서 가장 압도적인 기록을 갖고 있는 장 에릭 베르뉴의 메시지입니다.
실제로 스텔란티스는 구 PSA가 갖고 있는 전동화 관련 압도적인 기술과 협업 인프라를 바탕으로 배터리 용량 104kWh 이상, 1회 완충 시 주행거리 700km 이상이 가능한 전기차 플랫폼 STLA 플랫폼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여기에 포뮬러-E의 기술이 적용되는데, 현재 2세대 포뮬러-E 머신까지는 PSA 그룹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토탈 산하 배터리 기업인 SAFT가 깊이 관여했습니다. 포뮬러-E는 배터리 유지 관리 전략에 대한 전략이 무척 중요한데 그 점에서 다른 팀 대비 압도적 우위를 갖고 있는 것이죠. 참고로 SAFT는 프랑스와 독일에 각각 연산 규모 24GWh의 기가팩토리를 건설 중이며 2023년부터는 각 공장에서 8GWh의 물량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가 오면 더 즐거울지도!
펠릭스 다 코스타
그래도 레이스 얘기가 핵심이죠. 두 선수 모두 의지가 강합니다. 현재 DS 팀 테치타는 시즌 종합 244포인트로 3위에 올라 있습니다. 드라이버 순위는 장 에릭 베르뉴가 4위, 안토니오 펠릭스 다 코스타가 5위입니다. 다 장 에릭 베르뉴는 이번 시즌 5회 포디움에 올랐고 2019/2020 시즌 챔피언인 펠릭스 다 코스타는 지난 7월 중순 뉴욕 E-PRIX에서 이번 시즌 팀에게 첫 우승을 안겼습니다.
시즌 챔피언, 더블 챔피언(팀, 드라이버)를 여러 차례 경험한 선수들인만큼 이번 시즌 성적이 만족스러울 리 없었습니다. “포디움에 올라간 것도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레이스에서는 우승이 목표입니다. 서울 E-PRIX가 이번 시즌의 가장 좋은 기억이 되길 기원합니다.”
최근 서울에 쏟아진 폭우 그리고 경기 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비에 대한 질문에는 크게 어렵지 않게 답했습니다. 특히 펠릭스 다 코스타는 “빗속에서의 경기를 즐기는 편”이라고 전했습니다. “실제 2021 시즌 로마 E-PRIX에서는 경기 내내 계속 비가 내렸는데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다 코스타는 해당 시즌, 아깝게 우승을 놓쳤지만 좋은 경기를 보여주었던 발렌시아 E-PRIX를 통해서도 비에 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다 코스타 특유의 ‘공중부양’ 포즈를 포디움에서 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현재 팀 포인트나 드라이버 포인트 모두 1위와 차이가 약간 있습니다. 1위를 달리는 메르세데스-EQ를 앞지르려면 더블 라운드 동안 메르세데스-EQ가 모두 포인트 피니쉬에 실패한다고 가정했을 때 최소 48포인트 이상을 확보해야 합니다. 물론 두 선수가 한 번씩이라도 우승을 가져가거나 원 투 피니쉬가 나오면 상위 팀이 포인트 피니쉬를 한다고 해도 해볼 만한 싸움이 됩니다.
포뮬러-E의 특징은 레이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흥미로울 만한 점이 있습니다. 우선 게임적인 요소인 팬부스트인데요. 인기 투표를 통해 가장 많은 응원을 받은 레이서는 경기 중 추가 출력을 5초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방 차량이 배기 가스를 내뿜지 않고 포뮬러 원에 비해서는 와류도 적게 일으키기 때문에 극한의 추격과 추월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시가지 서킷의 특성상 단 한 번의 실수가 큰 위기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역전의 기회가 됩니다. 도시의 속성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죠.
아무쪼록 선수들과 팬들이 경기를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장 에릭 베르뉴는 “한국이 처음은 아니다”라며 2010년대 초반 한국에서 열린 포뮬러 원 그랑프리의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연봉 수십억 대 선수들이 제대로 잘 곳도 없었던 그 당시 영암과, 2020년대 서울은 다른 환경이니 아마 좋은 인상을 받지 않을까 합니다. 십여 년 만에 한 번 열리는 강남 대운하 개통은 못 봤겠죠? 그랬길 바랍니다.
글
한명륜 기자
사진
스텔란티스 코리아,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