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 서스펜션의 창시자, 알렉스 몰튼

지금의 미니가 있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로버 미니의 서스펜션을 고안했으며, 자전거인 미니 벨로의 창시자이기도 한알렉스 몰튼이다. 또한 그는 몰튼 가문의 주요 사업인 고무를 이용해 사업적으로 성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로버 미니 그리고 미니 벨로와 함께했던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본다.


거장이 되기 위한 밑거름

알렉스 몰튼(Alex moulton)1920 4, 영국 고무 산업의 선구자로 불리는 스테판 몰튼(Stephen moulton)의 증손자로 태어났다. 스테판 몰튼은 영국에서 고무 제품 제조공장을 운영했다. 몰튼은 어렸을 때부터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Great Western Railway)의 증기기관차와 고무 제조 공장을 앞마당 삼아 자랐기 때문에, 공학기술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렉스 몰튼은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말버러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센티넬 트럭 회사에 입사했다. 1938년에는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기 위해 킹스 컬리지(King’s College)에 입학했다.
 
그러던 중 1939년에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몰튼은 항공기 제조사인 브리스톨 에어로 플레인 컴퍼니(Bristol Aeroplane Company)에 입사했다. 당시 BAC는 비행기 엔진을 제작했다. 재밌는 점은 BAC에서 총괄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로이 페든(Roy Fedden)의 개인 조수가 되기 전까지 몰튼은 배관공으로 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튼은 당시를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시간으로 회상했다.


‘미니’하면 빼놓을 수 없는 세 사람

미니하떠오르는 세 사람이 있다. 알렉 이시고니스, 알렉스 몰튼, 존 쿠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몰튼은 알렉 이시고니스를 1949년에 친구인 제레미 프라이(Jeremy Fry)를 통해 만났다. 알렉 이시고니스와 제레미 프라이는 힐클라임 레이싱카에 열정적이었던 드라이버이자 제작자였다.
 
1959, 원유 공급이 줄고, 유가가 폭등하던 시기에 알렉 이시고니스(Alec Issigonis)의 손에 의해 로버 미니가 탄생했다. 소형차에 대한 요구가 컸던 시장 상황에서 미니는 작은 차체와 넓은 실내로 큰 인기를 누렸다. 비슷한 시기, 존 쿠퍼(John cooper)는 미니를 튜닝해 미니 쿠퍼와 미니 쿠퍼S를 출시했다. 미니 쿠퍼는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우승하며 성능을 인정받았고, 미니의 인지도도 크게 올라갔다.

가문의 주특기 고무를 이용한 기술력

이토록 인기를 끌었던 로버 미니에 탑재되었던 서스펜션이 바로, 알렉스 몰튼이 개발한 서스펜션이었다. 그가 만든 서스펜션은 몰튼 가문의 고무를 이용한 방식이었다. 몰튼의 서스펜션은 스프링 부분이 강철이 아닌 고무로 되어있어, 부피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충격 흡수에 효과적이었다. 1969년에는 보다 부드러운 스프링을 위해 가스 시스템을 더한 하이드로래스틱(Hydrolastic)이라는 서스펜션을 개발하기도 했다.
 
하이드로래스틱 서스펜션은 미니에만 탑재된 것은 아니었다. 이 서스펜션은 랜드로버의 전신인 레이랜드, 오스틴 맥시 등 1,200만대 가량의 차량에도 적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 토요타에서 소형차 전용 서스펜션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외에 하이드로래스틱 서스펜션은 몰튼 자전거에도 꾸준히 쓰이며 몰튼 서스펜션의 이름을 알렸다.

미니 벨로의 창시자

알렉스 몰튼의 자전거 제조는 1956년 수에즈 운하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연결하는 주요 해상 연결 운하였다. 하지만, 1956년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유럽 주요국에 수입·수출 품목을 실은 선박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했고, 이는 2차 중동전쟁의 구실이 되었다. 이 때문에 석유값이 폭등했고 영국은 휘발유 배급제를 시행하기에 이른다. 석유를 이용하던 교통수단은 마비될 지경이었고, 알렉스 몰튼은 자동차를 대체할 도심 교통 수단으로 자전거 개발을 시작한다.

당시의 자전거는 무거운 프레임과 큰 바퀴를 가졌었다. 알렉스 몰튼은 도심에서 보다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자전거의 바퀴를 작게 만들었다. 하지만 작은 바퀴는 충격 흡수가 원활하지 않아 승차감을 저하시키는 요인이기도 했다. 이에 알렉스 몰튼은 고무로 만든 서스펜션을 장착하게 되었고, 그렇게 몰튼의 첫 번째 자전거가 탄생했다.
 
몰튼의 자전거 프레임은 알파벳 ‘F’를 비스듬하게 눕힌 형태였다. 무거운 프레임이 낮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자전거의 무게중심은 낮아졌다. 그리고 이는 고무 서스펜션의 효과와 더불어 민첩함과 안정성을 가져왔다. 당시 이 자전거는 15만대 이상 팔리며 유행했고, 몰튼 바이시클은 1년 만에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자전거 제조 회사가 되었다.

기술력을 자전거에도 입히다

알렉스 몰튼은 몰튼 바이시클설립 후, 자전거 생산에 집중했다. 하지만 자전거 분야에서도 알렉스 몰튼의 도전은 끊이지 않았다. 알렉스 몰튼은 스페이스 프레임 구조를 자전거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스페이스 프레임은 삼각형이 모여 공간을 만들어내는 트러스 구조로, 레이싱 머신과 고성능 차량에도 쓰이는 방식이다. 가볍고 견고하지만, 생산 단가가 높고 제작이 까다로운 구조임에도 알렉스 몰튼은 과감하게 시도했다.

이 스페이스 프레임 구조의 자전거와 고무 서스펜션은 몰튼 바이시클의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기존의 몰튼 바이시클은 라레이(Rareigh)를 통해 위탁 생산을 해왔다. 하지만 1975년부터 대량생산을 포기하고, 수작업을 통한 프리미엄 모델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몰튼 박사의 도전은 진기록을 낳기도 했다. 1986, 사이클 선수인 짐 글로버가 스페이스 프레임 구조의 자전거를 타고 평지에서 82.5km/h라는 신기록을 달성한다. 유선형의 페어링(Fairing)을 쓴 이 자전거의 최고속도는 기네스에도 등록되어 있다.

알렉스 몰튼은 2012 12 9,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미니벨로의 아버지라 불리는 알렉스 몰튼을 추모하며 많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사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니벨로와 로버 미니다. 알렉스 몰튼의 사진은 로버 미니와 미니벨로가 항상 함께했다. 백발의 노인이 된 후에도, 그는 항상 웃으며 미니벨로에 올랐다. 미니와 자전거를 사랑했던 알렉스 몰튼은 떠났지만, 조카 숀에 의해 몰튼 바이시클은 계속되고 있다.



이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