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파리 모터쇼가 지난 10월 16일로 보름간의 일정을 마쳤다. 많은 신차와 새로운 기술이 공개되었지만, 모터쇼에 앞서 또 다른 흥미로운 내용도 공개되었다. 프랑스 자동차 제조사인 시트로엥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각 국가의 15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자동차 안에서의 삶(Our lives in Cars)’이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흥미로운 결과 몇 가지를 소개한다.
설문에 참가한 이들의 답변을 취합한 결과, 유럽인들은 평균적으로 평생 4년 1개월의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2년 9개월은 운전자로서, 1년 4개월은 승객으로 보냈다. 자동차 안에서 함께 한 시간이 가장 많은 사람들은 역시 가족으로, 2년 1개월의 시간 동안 동승했다. 참고로 동승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곧 (목적지에) 도착할 거야”라는 말이 61회이며, 이에 대한 반문인 “그래서 언제 도착해?”는 225회에 달한다.
물론, 자동차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동승을 통해서만이 아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유럽에도 통하는 듯, 유럽 운전자들은 운전 중 거의 매일, 1만 56명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거나, 감사를 표한다고 한다. 요즘 ‘로드 레이지’라는 용어가 회자될 정도로, 분노를 참지 못하는 한국의 사정에 비춰 보면, 생각해볼 만한 통계다.
자동차는 밀폐된 개인의 공간으로, 개인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유럽인들에게는 마치 운전자만의방과 같은 공간이다. 따라서 집에서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차 안에서 할 수 있는데, 식사가 대표적이다. 유럽인들은 평생 식사와 간식을 포함해 2,050번 차 안에서 뭔가를 먹는다. 적당한 양분 섭취는 졸음 운전을 막아주지만, 운전 중 많은 양의 식사는 비만의 지름길이자 각종 위장병의 원인이므로 본받을 일은 되지 못한다.
출근을 위한 메이크업을 자동차 안에서 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유럽인들은 평생 자동차 안에서 1,234회 헤어스타일을 손질하고 화장을 하거나 고친다. 참고로 미국 뉴욕 주에서는 자동차 안에서 메이크업을 할 경우 최대 1,000달러까지 벌금을 부과한다. 이것이 운전 중 스마트폰 사용만큼 위험하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유럽이 좀 더 관대한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바로 연인 간의 상열지사일 것이다. 유럽 운전자들은 평생 차 안에서 무려 2,432회의 키스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그 키스는 연인에 국한된 것은 아니며, 사랑하는 가족과 반려동물까지 포함된다. 참고로 유럽 중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2008년 이후 차 안에서 키스를 하면 500유로(당시, 한화 약 80만 원)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자동차 안에서 하는 2,430번의 키스 중 약 1/600은, 한 단계 더 진전한 스킨십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럽의 운전자들은 평생 최소 4번은 차 안에서 사랑을 나눈다고, 이 설문 결과는 말하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의 보수적인 주에서는 벌금 부과 대상이 되는 ‘공연음란’에 해당하나,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에 매우 관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입증하는 설문결과인 셈이다. 참고로 상기할 부분은 이 조사 대상 운전자들의 연령이 15세 이상이라는 점이다.
이 설문이 말하는 것 중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자동차가 그 어떤 장소보다 감정적인 공간이라는 것이다. 유럽의 운전자들은 생활 공간 중 자동차 안에서 가장 자주 노래하며(3.917회), 숨 넘어가게 웃거나(170회) 때로 멈추지 않고 운다(59회).
시트로엥은 이러한 설문 조사를 그들의 새로운 광고 ‘당신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시트로엥(Citroen inspired by You)’의 제작을 위해 진행했다. 2019년 설립 10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시트로엥은, 그들이 얼마나 유럽인들의 삶 속에 오래 자리잡아 왔고, 또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있는지를 어필하고자 한 것이다. 여러 편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는 이 광고 캠페인은 10월 둘째 주부터 시작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