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부품들은 각각 본연의 임무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한 가지 이상 혹은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경우도 있다. 주간주행등이 이와같은 경우다. 현재의 주간주행등은 단순히 주행등의 기능뿐만 아니라, 자동차의 디자인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현대의 자동차 디자인에서 패밀리 룩을 구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자동차의 필수 기능으로 자리잡은 주간주행등에 대해 알아본다.
주간주행등은 DRL(Daytime Running Lamp)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주간주행등은 낮에 켜는 라이트로써 교통사고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 해외에서는 오래 전부터 주간에도 전조등을 사용하도록 권장해왔다. 이는 1960년대 미국 텍사스 주에서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전조등을 켜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1972년, 핀란드는 유럽에서 최초로 주간에도 전조등을 점등하도록 의무화했고, 뒤이어 북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는 흐린 날씨가 잦고, 밤이 긴 북유럽 국가의 특성 탓에 뛰어난 교통사고 예방 효과를 발휘했다.
이와는 반대로 국내에서는 낮에 전조등을 점등하는 것은 민폐로 여겨지기도 했다. 심지어 1990년대에는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했는데, 이는 과한 처사라는 민원에 의해 폐지된 바도 있다. 이런 논란을 거쳐, 주간의 전조등 점등에 의한 교통사고 예방 효과를 인정한 것은 2010년에 이르러서의 일이었다. 2010년 11월 10일, 국토교통부는 <자동차 안전 기준에 관한 규칙>에 주간주행등과 관련한 법규를 신설했고, 2015년 7월에는 주간주행등 장착 및 점등을 의무화했다.
주간주행등의 기능을 아직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은 존재한다. 그러나 교통 상황에 대한 인지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노년층이나 판단력이 부족한 유아 등 교통약자로 시선을 옮기면 그 효과는 크다. 교통안전공단은 주간주행등 점등 시 교통사고가 19% 감소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차종 별로 5~44%의 교통사고 감소 효과가 확인되었으며, 세계적으로 차량과 보행자 간의 충돌 사고가 28% 감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간주행등의 기준은 <자동차 안전 기준에 관한 규칙> 제38조의 4항에 명시돼있다. 자동차 제조사의 경우 주간주행등은 좌·우에 각각 1개씩 장착해야 하며, 등광색은 백색만 허용한다. 또, 시동을 걸면 자동으로 켜지되, 전조등이나 안개등을 점등할 때는 자동으로 꺼져야 한다. 규정 광도는 400~1200 칸델라(cd)로, 이는 전방 안개등의 최저 광도인 900 칸델라와 유사한 수치다.
주간주행등을 의무화하자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를 전면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녹여야만 했다. 이는 앞으로 출시될 자동차 디자인의 필수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밝은 낮에도 LED를 사용해 존재감을 알리는 주간주행등은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좋은 디자인거리가 되었다.
볼보는 포드의 산하에 있을 당시, 투박한 실내·외 디자인으로 대중에게 외면 받으며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2010년 3월, 볼보가 중국의 지리자동차에 인수된 후 전에 없던 과감한 디자인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6년 후, 볼보는 XC90과 S90을 필두로 과감한 디자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볼보의 주간주행등은 ‘토르의 망치’라 불리며, 2010년대 볼보의 새로운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주간주행등하면 빼놓을 수 없는 제조사로 아우디를 꼽을 수 있다. 영화 <아이언 맨>시리즈에 등장했던 아우디의 R8은 독특한 디자인만큼이나 12개의 LED로 구성된 주간주행등으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아우디는 자사의 차종에 주간주행등을 순차적으로 적용해 고유의 디자인을 완성했다. 이는 여러 자동차 제조사들이 주간주행등을 이용해 다양한 개성을 뽐내는 발단이 되었다. 이에 더해 최근의 아우디 차종들은 면발광 LED기술을 내세우며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완성해가고 있다.
1989년, 도요타가 브랜드를 런칭한 이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렉서스 역시 주간주행등 디자인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제조사다. 특히 렉서스는 특유의 스핀들(Spinddle) 그릴과 주간주행등의 조합을 통해 강렬한 인상의 패밀리룩을 제시하고 있다. 렉서스의 주간주행등은 제조사의 이니셜인 ‘L’을 형상화한 것으로, 헤드라이트 혹은 헤드라이트의 하단에 독립적으로 장착한다.
자동차를 사람으로 빗대어 생각해보면, 주간주행등 디자인은 눈화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람의 눈에 해당하는 헤드라이트와 연관 지은 이유뿐만 아니라, 사람의 인상을 결정하는 부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주간주행등은 탄생 배경인 안전을 넘어, 헤드라이트의 발달과 함께 심미적 기능도 함께 키워왔다.
휠은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수단으로 시작해, 현재는 디자인과 냉각, 공기저항 저하의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주간주행등도 비슷한 맥락이다. 언젠가 주간주행등의 기능은 자율주행 시스템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역시 주간주행등은 형태와 명칭을 바꿔가며,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그 존재를 이어 갈 것이다.
글
이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