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역사 긴 이야기 메르세데스 벤츠 CLS

사람이나 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움직이는 이동 수단은 18세기 퀴뇨. 19세기 칼 벤츠 이전에 없던 개념이었다. 자동차의 역사는 이처럼 존재하지 않던 개념에 실체를 부여하고, 그것이 다시 고정관념이 됐을 때 이를 깨트리는 일로 점철됐다. 그리고 이번 콘텐츠에서 조명할 메르세데스 벤츠의 CLS 역시 기존 세그먼트의 고정관념을 깨고, 또 하나의 세그먼트를 만들어낸 차종이다. 그렇기에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존재한다.

문이 아니라 루프가 본질이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CLS 클래스는 경량 쿠페(Coupé-Light)를 의미하는 CL 클래스와 세단을 의미하는 S를 조합해 만든 명칭이다. CLS가 첫 선을 보인 것은 200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계획은 비교적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왔는데, 중형 쿠페인 E클래스 쿠페(W124)1995년에 단종되면서 그에 대한 대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4,900㎜ 이상의 전장, 2,800㎜ 이상의 휠 베이스에, 1,800kg이상의 공차중량을 갖춰 명실상부한 중형 고급 쿠페로 자리잡은 CL 클래스와의 포지션 충돌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고급스러우면서도 펀카의 성격도 충분히 지닌 CL의 분위기를, 견고한 인기를 누려 온 E 클래스(W211) FR 방식 플랫폼을 통해 구현하려 했다. 4도어 쿠페의 발상이었다. 이전까지 쿠페는 유선형 차체에 2개의 도어, 그리고 2인승이나 협소한 2열 좌석을 더한 4인승 차량으로 정의됐다. 하지만 이미 20세기 중반에 쿠페 뿐 아니라 자동차의 개념은 새로 개발되고 혼용되었으므로, 쿠페에 문 2개를 더 단다는 것이 절대적인 반역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본질적 과제는 길어지는 루프로 인한 차체 강성 확보와 비례 구현이었다. 그러면서도 무게는 줄여야 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1세대 CLS 350은 약 1,700kg, 페이스리프트 당시 등장한 CLS63AMG 1,900kg이었다. 특히 6.2리터(6,208cc) V8 엔진을 얹은 63AMG의 무게는 당시 3.2리터 V6 가솔린 엔진을 얹었던 폭스바겐의 페이톤보다 200kg 이상 가벼운 것이었다.
 
이는 CLS의 프로젝트에 메르세데스 벤츠의 인력뿐만 아니라 협력사의 인력까지 합쳐 150명이 투입된 결과였다. 참고로 이 때의 협력사 중 하나인 에드샤(Edscha)는 쿠페와 컨버터블 차량의 루프 제작사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에드샤는 메르세데스 벤츠 뿐만 아니라 볼보와 벤틀리, BMW의 컨버터블 차량의 루프도 제작했는데, 후에 4인승 쿠페 영역의 전장에 참여한 BMW 6시리즈에도 힘을 보탠다.

역사에 남을 선의 미학

CLS의 첫 디자인 작업은 2001년경에 진행되었는데 디자이너는 2000년대 이후 메르세데스 벤츠의 쿠페 라인을 지배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마이클 핑크였다. 그는 1997년에 공개된 CLK를 비롯해 메르세데스 벤츠의 다양한 쿠페와 컨버터블의 선을 만들어낸 인물이었다.

CLS의 디자인적 핵심과 개성은 자동차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다. 그리고 그러한 개성의 핵심은 단연 측면에서 본 윤곽이다. 긴 오버행, 공기 중으로 사라질 듯한 앞뒤 라인은 1,403㎜에 불과한 전고를 실제보다 더 낮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윈드실드의 각도는 보닛의 측면 라인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이를 통해 0.22의 공기저항계수를 구현할 수 있었지만, 운전석이나 조수석에 탑승할 때는 스쿼트 자세를 취하듯 자세를 낮춰야 했다. 한편 캐릭터 라인은 전륜 펜더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도어 손잡이 위를 지나 후미등까지 완만하고도 날카롭게 이어졌다. 이 날카로움은 날카로운 펜으로 망설임 없이 그은 듯한 트렁크 도어의 윗선, 후미등의 윤곽과 어울리며 자동차 디자인의 신기원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진보적 이미지 속에도 커다란 삼각별과 양 옆으로 펼쳐진 날개 그릴 등 과거 1950년대 SL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면모도 있었다. 또한 물푸레나무과 목재의 고급스런 문양을 통한 인테리어 트림과 안락감 높은 실내 역시, 메르세데스 벤츠의 옛 정취를 원하는 유저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특히 스플릿 형태로 구현된 뒷좌석은 넉넉한 레그룸까지 갖추고 있어, 벤츠의 세단적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적 팬들에게도 환영받았다.

첨단 기종의 정체성 확립한 1세대 63AMG

2006, 메르세데스 벤츠는 CLS의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했다. 특히 최고급 기종인 CLS63AMG를 통해 첨단 기종으로서의 위치를 강하게 어필했다. 우선 인테리어 면에서는 우드 트림 대신 카본 파이버 소재를 적극 채용해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표현했다. 이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인테리어 디자인의 시초 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음성과 최소화된 조작으로 차내 전장 및 주행 관련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는 커맨드(COMAND, 운전석 조정 데이터 시스템)의 초기 형태가 적용되었다.

주행 감성 면에서도 63AMG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고급, 고성능 자동차의 비전을 제시했다. 전륜서스펜션의 경우 같은 4링크 방식이지만 CLS350 이하에서는 맥퍼슨 스트럿과 4링크 시스템을 함께 사용한 데 비해, 63AMG에서는 전자적으로 감쇠력과 차고를 제어할 수 있는 에어매틱 서스펜션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514hp(6,800rpm)의 최고 출력과 64.2kgm의 강력한 최대 토크를 바탕으로 가속할 때나 급선회할 때도 전륜이 조향력을 잃지 않도록 했다. 2세대에는 63AMG에도 4륜 구동 방식이 적용되었지만, CLS 특유의 섬세한 세팅과 유연함의 은 후륜 구동 차량에서 보다 잘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유저들의 전언이다.

남성미 돋보인 2세대, 호적수와 함께 흥하다

CLS63AMG의 비전은 2010년에 등장한 2세대에 보다 발전적으로 드러났다. 2세대 자동차의 디자인을 맡은 인물은 당시 37세의 선임 디자이너였던 휴버트 리(한국명 이일환) 였다. CLS의 전대 디자이너였던 마이클 핑크가 쿠페를 디자인하며 경력을 쌓았다면, 2002년 벤츠에 합류한 휴버트 리는 당당하고 근육질의 선을 구현하는 데 장기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캐릭터가 되는 선들은 CLS 2세대의 콘셉트카라고 할 수 있는 F800 스타일, 그리고 2012년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장동건의 베티로 등장한 M클래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F800스타일 콘셉트카(왼쪽)과 M클래스(오른쪽). 휴버트 리의 디자인 언어를 알 수 있는 차종이다

휴버트 리는 새로운 CLS의 보닛에 근육미를 더했다. 헤드라이트 디자인도 남성의 부릅뜬 눈매를 연상케 한다. 전폭이 1세대보다 10㎜ 넓어진 1,872㎜인데, 견고한 윤곽선을 지닌 범퍼의 라인도 10㎜ 이상의 증가폭을 느끼게 한다. 측면에서 봤을 때 콧대라고 볼 수 있는 라디에이터 그릴 역시 1세대보다 굵은 선을 그리며 돌출되어 있다. 측면 캐릭터 라인 역시 1세대와 달리 헤드라이트의 눈꼬리 부분에서 시작해 펜더 위쪽을 지나간다. 이 선은 B필러를 지나 C 필러 방향으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아래로 떨어지며 후륜 펜더 부분의 볼륨감을 강조한다.

디자인 작업 중인 휴버트 리(왼쪽), 그의 CLS 2세대 디자인을 살펴보고 있는 임원들(오른쪽)

하지만 CLS 2세대를 출시할 무렵, 4도어 쿠페 시장의 후발 주자였던 포르쉐 파나메라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된다. 파나메라는 다름아닌 메르세데스 벤츠의 1세대 SLK V 클래스의 디자이너였던 마이클 마우어가 빚어낸 자동차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LS는 호적수와 더불어 호황을 누렸다. 파나메라는 2012년 기준으로 7,600대 이상 팔렸다. 캐나다를 합치면 8,000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런데 CLS의 이 시기 판매량도 8,000대를 넘었다. 경쟁하는 두 차종의 존재는 부유층들에게 4도어 럭셔리 쿠페라는 시장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 셈이다. 파나메라의 등장 이전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CLS의 인기가 크게 반등한 점도 이러한 영향이라 볼 수 있다.


짧은 역사 긴 이야기
메르세데스 벤츠 CLS
4도어 쿠페 시장의 후발주자인 파나메라를 디자인한 마이클 마우어. 원래 메르세데스 벤츠의 SLK 1세대를 디자인했다
CLS, 자동차 상품 전략의 교과서

CLS는 탄생 당시부터 럭셔리카를 지향하면서도 실용성에도 방점을 둔 자동차로 개발됐다. 따라서 선택의 폭도 비교적 낮은 배기량의 디젤 엔진부터 높은 배기량의 디젤 엔진까지 다양하다. 1세대에만 해도는 무려 8종의 가솔린 엔진과 2종의 디젤 엔진을 선보였다. 또한 2세대에 와서는 다운사이징을 통해 배기가스 내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질소산화물 등의 양을 낮춘 블루 이피션시 기종을 대거 선보였으며, 15.6km/L의 높은 연비를 보이는 250CDI를 추가해 보다 젊은 소비자들도 CLS에 입문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CLS의 성공은 4인승 차량에 쿠페의 외형을 부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으며, 이는콤팩트카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1세대 페이스리프트 당시 출시되었던 CLC(C클래스의 스포츠쿠페), 메르세데스 벤츠 전체의 엔트리 기종 A클래스의 쿠페인 CLA 등은 한국의 젊은 소비자들에게도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