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는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9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7 서울모터쇼에서, ‘혼다 큐레이터’라는 여성 전시설명 인력들을 운용했다. 이 큐레이터들은 잠재 고객으로서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과 직접 소통하며, 혼다의 브랜드 이미지는 물론 자동차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를 제공했다. 지난 2013년부터 시작한 이래 세 번째를 맞는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세 명의 큐레이터와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보았다.
큐레이터, 사전적으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전시책임자를 의미한다. ‘돌봄, 관리’를 의미하는 라틴어 쿠라레(curare)에서 온 이 용어는, 전시의 기획안을 입안하고 전시품의 위치를 결정하며 수장품을 관리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핵심인력이기도 하다. 때로는 전시를 찾은 이들에게 해설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슨트(안내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혼다는 2017년 서울모터쇼에서 자동차 분야 9인, 모터사이클 분야 4인, 총 13명의 큐레이터 인력을 배치했다. 킨텍스 제2전시장에 마련된 혼다 부스는 식스휠 브랜드답게 다른 제조사 및 브랜드의 전시장보다 관람객들의 층이 연령별, 취향별로 다양했다. 이런 관람객들과 혼다의 철학 및 가치를 연결하는 관계를 찾아내고 전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혼다 코리아 측은 이러한 점을 고려해 모터쇼 전에 큐레이터들을 위한 높은 수준과 밀도의 교육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특히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의 철학부터 혼다 특유의 만드는 재미, 파는 재미, 타는 재미라는 가치를 교감하게 하는 데 애썼다고 밝혔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조정아, 정슬기, 김하련 큐레이터로 모두 아나운서 및 리포터 활동 등으로, 대화를 통한 정보의 전달과 대인(對人) 업무에 대해서는 프로들이었다. 이들 모두 지난 2015년 모터쇼에 이어 2회차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김하련 큐레이터는 2013년 서울모터쇼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컴패니언 모델이기도 했다.
혼다는 국내 수입자동차 브랜드 중 비교적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자동차들을 선보여 왔다. 그런만큼 모터쇼에서 혼다 부스를 찾는 이들은 단순한 구경을 넘어 잠재적으로 구매 의사가 있는 이들이나 이전 세대의 차량을 경험해본 이들이 많다. 따라서 혼다의 큐레이터는 그 자체로 도전적인 일이기도 하다.
큐레이터들은 모터쇼 기간 내내 자신이 관람객들에게 설명해야 할 자동차를 미리 배정받고, 이에 대한 지식을 숙지하는 기간을 거쳤다. 쉽지는 않았지만, 첨단 정보로 ‘무장’하고 깊은 질문을 해오는 관람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파워트레인과 섀시 제원 및 자신이 맡은 차량이 속한 세그먼트의 경쟁 기종에 대한 정보까지 익혔다. 물론 자동차에 대한 제원은 기자들조차 항시 공부해야 할 만큼 복잡한 영역이므로, 혼다 코리아의 직원과 딜러들이 큐레이터들을 도왔다.
조정아 큐레이터는 1.8리터, 전장 4,295㎜, 휠베이스 2,610㎜의 소형 SUV인 HR-V의 설명을 맡았다. 현재 세계적으로나 국내 상황으로 보나 가장 인기가 높은 세그먼트의 차량인데다, 가격도 3,000만 원대 초반이라 관람객들의 관심도 그만큼 뜨겁다. 특히 비슷한 가격대의 국산 SUV를 콕 집어 무엇이 더 나으냐는 비교를 해달라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질문에는 조금 난감할 법도 하다. 그러나 조정아 큐레이터는 “우선 관람객의 말에 동의하는 것으로부터 설명을 시작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관람객들이 이야기하는 사실을 최대한 존중하고 들어보면 그들의 말 속에 진짜 궁금한 것, 그리고 내가 맡은 자동차가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아담한 체구에 숏커트, 큰 이목구비에다 표정이 다양한 정슬기 씨는 도쿄모터쇼의 혼다 큐레이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혼다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실제로도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며 즐겁게 받아들인다는 그가 맡은 자동차는 혼다의 플래그십 SUV인 파일럿이었다.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이 뚜렷한 차”로 파일럿을 정의한 그는, 가족 중에도 혼다의 유저가 있어 혼다의 자동차가 익숙하다고 전했다. 파일럿은 3.5리터(3,471cc) V6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으며, 전장 4,940㎜, 휠베이스 2,819㎜의 우람한 체구가 보여주듯 넓은 공간을 갖고 있다. “부수적 공간이 아니라 충분한 승차공간으로 기능하는 3열의 3좌석을 보여드리고 8인승이라는 캐릭터를 확실히 제시한다”는 것이 파일럿을 알리는 그의 노하우다.
김하련 큐레이터는 현장에서 알아본 이들이 더러 있었을 것이다. 낚시를 좋아하는 이들은 낚시 채널에서, 그리고 2013년 서울모터쇼에서는 재규어 랜드로버 부스의 컴패니언 모델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2017년 서울모터쇼에서는 모터사이클 마니아들에게, 혼다의 기술력이 집약된 CBR1000RR을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낚시 방송 3년차인 그에게, CBR1000RR을 어떤 물고기에 비유할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답은 금방 나왔다. “CBR1000RR은 감성돔에 비유할 수 있다”고 단언한 그는 “감성돔은 빠르게 달리는데다, 방향을 바꾸는 힘이 대단해 초보 조사들은 낚기 어렵다. 차체를 콘트롤할 능력을 갖춘 라이더에게만 시트를 허하는 슈퍼스포츠 장르인 CBR1000RR은 딱 감성돔이다”라고 자신있게 전했다.
내친김에 김하련 큐레이터에게 다른 두 큐레이터가 맡고 있는 자동차와 매치되는 물고기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현재 활동 중인 낚시 방송과 인연이 되어 오래 탔다는 파일럿은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광어, 작지만 귀엽고 내실 있는 HR-V는 뱅에돔에 비유했다. 특히 “뱅에돔은 눈이며 몸의 무늬 등이 모두 예쁜 물고기”라며 이에 비유한 HR-V의 날렵한 모양과 깜찍한 모양새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10일이 넘는 기간 동안 함께 생활한 이들은 정서적 유대는 물론, 다른 큐레이터들이 맡은 자동차로까지 관심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었다. 이미 파일럿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김하련 큐레이터는 2019년 서울모터쇼에 다시 큐레이터로 활동하게 된다면 파일럿의 설명을 맡아보고 싶다고 전했다. 2015년 서울모터쇼 이후로 거리에서 만나는 혼다의 자동차가 남 같지 않았다는 정슬기 큐레이터는 2019년 서울모터쇼에서 활동한다면 오딧세이의 설명을 맡아보고 싶다고 전했다. 모터쇼 내내 HR-V와 호흡했던 조정아 큐레이터는 CR-V로 한 ‘체급’ 올릴 수 있기를 희망했다.
자동차 문화나 자동차를 다룬 콘텐츠가 남자들만이 재미있어하는 콘텐츠라는 고정관념이 깨져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큐레이터 본인들이 자동차의 깊은 부분까지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혼다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큐레이터 경력자들에게는 모터쇼 전에 먼저 연락을 전한다. 그 중 상당수가 재참여를 희망할 정도로 행사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전했다.
혼다의 큐레이터 프로그램은, 이전까지 컴패니언 모델들의 이미지에 의존했던 모터쇼 집객이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물론 혼다 역시 여느 전시관 부럽지 않은 톱클래스의 레이싱 모델들을 컴패니언 모델로 기용했다. 그러나 이미지 전략과 함께 잠재적 구매의사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를 함께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혼다가 2013년부터 큐레이터 프로그램을 운용해 온 까닭이다. 결국 이는 혼다의 기본 철학 중 하나인 ‘파는 재미’로 수렴되는 것이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