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스프린터 출신? 제조사 별 의외의 달리기 선수

제조사마다 가장 빠른 자동차를 묻는 질문은 넌센스일지도 모른다. 자동차의 동력 및 주행성능은 계속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제조사별로, 대표적인 고성능 기종조차 뛰어넘는 의외의 달리기 선수들이 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제원 성능을 바탕으로, 각 제조사에서 그간 대표 자동차들의 명성에 가려져 있던 달리기 실력을 가진 자동차들을 소개한다.

BMW M760Li, M을 뛰어넘은 플래그십 세단

현재 BMW의 자동차들 중 가장 강력한 최고 출력을 가진 기종은 놀랍게도 M 디비전의 차량이 아니라, 지난 3월에 출시한 M760Li다. BMW 측은 이 자동차에 M 배지를 달 것인지를 두고 최후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M760Li가 플래그십 세단이라는 정체성을 존중하기 위해 ‘M’의 숫자를 앞으로 두었다. 성능을 보면 왜 BMW가 고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M760Li는 롤스로이스 레이스에 장착되는 것과 같은 V12 6.6리터(6,592cc) 트윈 터보 엔진으로  609hp(5,500~6,500rpm)의 최고 출력을 발휘한다. M760Li는 BMW의 자동차 중 유일한 V12 엔진 장착 자동차인 셈이다. 이를 기반으로 최고 출력 600hp(6,250rpm)을 발휘하는 V8 4.4리터(4,395cc) 트윈 터보 엔진의 M6 컴페티션 에디션을 넘는 달리기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AMG 최강의 괴수, SL65 AMG 블랙시리즈

메르세데스 벤츠(AMG 포함)의 자동차 중 ‘괴물’급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자동차를 꼽자면, 최고출력626~650hp를 발휘하는 SLR 맥라렌과 SLR 스털링 모스, SLS AMG 블랙시리즈와 같은 ‘슈퍼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진짜 최강자는 바로 SL65 AMG 블랙시리즈다. SL65 AMG 블랙시리즈의 V12 6.0리터(5,998cc)트윈 터보 엔진은 최고 출력이 무려 670hp(5,400rpm)에 달하며 최대 토크는 102kg∙m(2,200~4,200rpm)에 이른다. 이를 기반으로 0→100km/h는 3.8초, 200km/h에 이르는 데도 11초면 충분하다. 2009년에 출시된 SL65 AMG 블랙시리즈는 최고 출력 면에서, 메르세데스 벤츠와 AMG 디비전을 합쳐 최고라는 타이틀을 8년째 지켜오고 있기도 하다.

푸조 308R 하이브리드, 500hp의 이단아

푸조도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제조사다. 하지만 양산차 분야에서는 고성능 기종 생산에 소극적이었다. 그런 푸조에도 드물게 고성능 양산 기종이 있다. 바로 1.6리터 (1,598cc) 직렬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과 전기모터를 조합한 308R 하이브리드다. 308R 하이브리드의 엔진은, 기존 푸조의 라인업 중 최고 출력이 가장 높았던 RCZ R에 장착되었던 엔진으로 270hp(6,000rpm)의 최고 출력을 발휘한다. 또한 전기모터 합산 출력은 최고 500hp에 달한다. 구동 방식은 4륜 구동으로, 4초 미만의 0→100km/h 가속 시간을 보이며, 1km 주파 시간은 22초대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성능에도 100km당 연료소모량이 6리터 정도에 불과하며, 1km 당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70g대다.

마세라티 MC12 코르사, 숨겨왔던 레이싱 혈통을 과시하다

마세라티는 103년이라는 긴 역사와 레이스 혈통을 지닌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지만 폭발적인 출력의 레이싱 카 보다, GT카(장거리 여행에 적합한 그랜드 투어링 카)의 개발 및 생산에 주력했다. 그런 점에서 2006년에 선보인 MC12 코르사는 마세라티의 자동차로서는 다소 특이한 기종이라 할 수 있다. 엔초 페라리와 같은 V12 6.0리터(5,998cc)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한 이 자동차의 최고 출력은 무려 745hp(8,000rpm)에 달했다. 이는 동일한 배기량의 엔진을 장착한 MC12의 625hp(7,500rpm)보다 무려 120hp나 높은 수치다. 이를 기반으로 MC12 코르사는 0→100km/까지 가속하는 데 3.4초, 0→160km/h까지는 6.4초 만에 도달한다. 마세라티가 MC12 코르사를 만든 것은, 한 차종이 대회에 참가라하려면 일정 수의 일반 판매용 자동차를 생산해야 한다는 ‘호몰로게이션(homologation, 승인)’ 규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동차의 가격은 147만 달러(한화 약 16억 6,000만 원)로 책정되었으며, 12대를 한정 판매했다.

애스턴마틴 원-77, ‘시한부’ 최고 성능

애스턴마틴은 영화 <007>에서 본드카로 잘 알려있다. 그러나 애스턴마틴은 명성과 배기량에 비해 최고 출력이 낮다는 지적이 있었다. 실제로 V12 5.9리터(5,935cc)자연흡기 엔진의 최고 출력은 10년 가까이 450~510hp에 머물러 있었다. 여러 가지 비판을 인식한 듯, 지난 2009년에 애스턴마틴은 최고 출력 750hp(7,500rpm)를 발휘하는 V12 7.3리터(7,312cc)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한 원-77을 선보였다. 출시 당시의 이 엔진은 양산차 자연흡기 엔진 중 가장 높은 출력을 발휘했으며 0→100km/h의 가속까지 3.7초에 불과했다. 원-77은 이름처럼 77대만 한정 판매했으며, 가격은 120만 파운드(당시 한화로 약 22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원-77의 ‘애스턴마틴 역사상 가장 빠른’ 타이틀은 앞으로 2년도 남지 않았다. 2017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한 최고 출력 820hp의 발키리가 2019년부터 고객에게 인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제네시스 프라다, 품위 속에 감춰진 질주 본능

지난 2013년, 현대자동차는 V8 5.0리터(5,038cc)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한 에쿠스 VS500 트림을 보인 바 있다. 당시 이 자동차의 최고 출력은 416hp(6,400rpm)에 달했지만, 현대자동차 플래그십의 상징성과 여유로움을 위해 장착한 엔진이었다. 그런데 이때, 제네시스 프라다 GP500(이하 제네시스 프라다)이 이 엔진을 장착해 화제를 모았다. 제네시스 프라다는 같은 5.0리터 엔진을 사용했지만 430hp(6,400rpm)의 최고 출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당시의 자연흡기 엔진 중에서는 높은 52kg∙m(5,000rpm)의 최대 토크에, 대형세단 치고는 비교적 가벼운 1,870kg의 무게로 0→100km/h까지 약 5.3초의 가속 성능을 보였다. 이는 스포츠카인 제네시스 쿠페(380GT)보다도 0.5초나 빠른 기록이었다.

혼다 NSX, 두 개의 강력한 심장에 기반한 퍼포먼스

혼다의 기술력은 유명하지만 고성능 라인업을 다양하게 둔 제조사는 아니다. 그러나 혼다는 1970년대부터 F1에 많은 투자를 했고 1990년, 그 결과를 양산차에 적용한 NSX를 선보였다. 그리고 혼다가 지난 2016년 공개한 2세대 NSX는,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분야에서 자타공인 최고 수준의 성능을 자랑한다. 최고 출력 500hp(6,500~7,500rpm)를 발휘하는 V6 3.5리터(3,492cc) 트윈 터보 엔진과, 후륜 좌우 각 바퀴에 각각 36hp 의 최고 출력을 전달하는 전기모터를 더해, 시스템 합산 출력 573hp를 구현한다. 시스템 합산 최대 토크는 56.1kg∙m로, 2,000rpm부터 시작되지만 0-2,000rpm까지 후륜의 각 모터에서 발휘하는 7.4kg∙m의 토크가 강력한 초기 가속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동력 성능을 바탕으로, 2세대의 NSX는 0→100kmh 가속 시간이 2.9초에 불과하다.

자동차는 매우 입체적인 기술의 결과물이고, 놓이는 맥락에 따라 그 존재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자동차의 본질이라는 달리기 성능도 그러하다. 기술 발전의 흐름과 자본의 투입 규모를 봤을 때, 고성능 디비전의 최신 기종, 최고 사양의 자동차가 가장 월등한 달리기 능력을 보일 것 같지만, 이런 일반적인 흐름을 벗어난 기종이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의외의 달리기 선수들이야말로 자동차 산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라 할 수 있다.


이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