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골프, 해치백의 알파이자 오메가

디젤 게이트의 한가운데 있는 차량으로, 현재 국내 판매 중이진 않지만 폭스바겐의 골프는 해외 제조사 차종 중 국산 자동차에 비길 수 있을 만큼 친숙하다. 1974년, 비틀의 후속 차종으로 개발되어 세계인들의 친구가 되어 온 골프는, 최근 페이스리프트와 더불어 새로운 파워트레인을 장착하고 폭스바겐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 한다. 이러한 골프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본다.

새로운 ‘바람’의 시작

196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폭스바겐의 비틀은 조금씩 정체기를 맞고 있었다. 물론 표면적으로 여전히 판매량은 높았고, 대중적 자동차의 역사를 바꾼 기종으로서의 명성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20세기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추격을 시작한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들도 무시 못할 발전을 기록했다. 특히 혼다의 N600, 포드의 핀토 등이 북미 시장에서 골프의 아성을 위협했다.

당시 폭스바겐 그룹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땅한 타개책이 없었다. 이 때 전기를 마련한 인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폭스바겐의 두 번째 회장 쿠르트 롯츠(Kurt Lotz)였다. 롯츠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부사관으로 근무하다가 전후에는 다양한 자동차의 전장을 납품하던 기업의 직원을 거쳐 회장에 이른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는 폭스바겐이 아우토 유니온을 흡수하면서 얻게 된 수냉식 엔진과 전륜구동 레이아웃 기술에 주목했다. 사실 FF 레이아웃은 전륜 구동 자동차의 새로운 길로 여겨지고 있었으나, 폭스바겐의 경우 경영난과 재정난이 겹치면서 그 실현은 미뤄지고 있었다. 1968년 회장으로 취임한 롯츠는 경영과 자금 문제를 해결하고, 1974년 드디어 골프가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한 장본인이었다.

골프는 그 철자로 인해 스포츠명인 골프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폭스바겐의 다른 많은 기종처럼, 골프 역시 바람을 일컫는 용어에서 유래했다. 골프는 뉴멕시코만을 흐르는 해류와, 이곳에 부는 바람을 가리키는 걸프 스트림의 독일어 표기 골프 스트롬(Golf Strom)이 어원이다.

참고로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는 골프의 첫 등장 시기부터 2009년 단종된 5세대 골프까지 ‘래빗’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물론 세계적으로는 ‘골프’가 더 유명하지만 래빗이라는 이름 역시 귀여운 인상의 이 자동차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북미 지역에서 적용되던 파워트레인은 유럽이나 글로벌 시장과는 조금 달랐는데, 예컨대 ‘래빗’의 마지막 세대이던 2005년 이후 골프에 장착한 최고 출력 150hp의 2.5리터 직렬 5기통 엔진이 대표적이었다.

다양한 파워트레인으로 소비자 유혹하다

골프는 출시와 동시에 빠르게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골프는 비틀과 달리 파워트레인에서부터 소비자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했다. 엔진은 가솔린의 경우, 최고 출력 50hp에 최대 토크 7.4kg∙m를 발휘하는 1.1리터 (1,093cc)부터 1.5리터, 1.6리터 그리고 112hp의 최고 출력과 최대 토크 15.3kg∙m를 자랑하던 1.8리터(1,781cc) 등 4가지가 있었다. 또한 디젤 엔진의 경우도 최고 출력 50hp, 최대 토크 8.2kg∙m의 1.5리터(1,471cc), 최고 출력 54hp, 최대 토크 10.0kg∙m의 1.6리터(1,588cc) 두 종류였다.

2세대 골프에는 슈퍼차저와 4륜 구동 레이아웃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파워 스티어링 휠, ABS 시스템을 장착하며 1세대와 차별화를 뒀다. 헤드라이트를 좌우 하나씩 추가하고 휠 베이스를 늘려 거주성도 높였다.

참고로 2세대 골프에는 재미있지만 웃을수만은 없는 일화가 있다. 당시 미국의 골프 생산공장을 방문한 카를 한 폭스바겐 회장이, ‘래빗’의 서스펜션을 포함한 승차감이 포드(미국식 승차감)와 유사하다는 점에 크게 노해 공장장을 교체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폭스바겐조차도 현지 실정에 맞춰 진행하는 현지화 전략이지만, 당시 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는 판매량의 증가라는 성과보다, 오히려 경쟁자들인 포드나 GM의 장점을 추종하며 부각시키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일화 탓에, 현재까지도 그 당시 미국 공장에서 만들어진 2세대 골프는 ‘흑역사’로 불린다.

위와 같은 일화는 폭스바겐이 기술적으로 가진 자부심, 자존심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자부심이 가장 극명히 드러난 엔진이 바로 1990년대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디젤 열풍의 원조 격인 TDI 엔진이다. 골프의3세대에 장착된 이 엔진은1.9리터(1,896cc) 로, 90hp의 최고 출력과 20.6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했다. 또한 3세대에는 높아진 배기량의 가솔린 엔진이 등장했는데, 최고 출력 174hp, 최대 토크 24kg∙m를 발휘하는 2.8리터(2,792cc), 최고 출력 190hp, 최대 토크 25kg∙m를 발휘하는 2.9리터(2,861cc)의 V6 엔진이 그것이었다. 2.8리터 엔진은 전륜 구동 기종에, 2.9리터 엔진은 4륜 구동 기종에 장착되었는데, 각각의0→100km/h 가속 성능은 2.8리터 전륜 구동이 7.1초, 2.9리터 4륜 구동이 8.1초를 기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성능 파워트레인과
‘핫해치’ 전설의 시작

골프는 대중적인 자동차이기도 하지만, 고성능 버전을 통해 ‘서민의 포르쉐’라는 별명을 얻고 있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골프는 처음 선보였을 때부터 일반적인 라인과 구분되는 고성능 기종 GTI를 선보였다. 이는 직분사(Injection) 방식을 기반으로, 엔진의 최대 토크를 강화해 강한 가속력을 얻어내기 위한 설계였다. 초창기의 GTI에는 최고 출력 110hp, 최대 토크 14kg∙m의 1.6리터(1,588cc) 직렬 4기통 엔진이 장착되었다.

이후 GTI는 거듭 발전을 거쳐, 최근까지 양산 전륜 구동 자동차 중 가장 빠른 랩타임을 보유하고 있던 클럽스포트S에 이른다. 이 자동차는 2.0리터(1,984cc) 가솔린 터보 엔진을 통해, 306hp의 최고 출력과 38.7kg∙m의 최대 토크를 바탕으로 5.8초의 0→100km/h 가속성능을 발휘했다. 또한 뉘르부르크링에서는 7분 47.19의 랩타임을 기록했다. 이는 2017년 4월 초, 혼다의 시빅 타입-R이 이를 깨기 전까지 가장 빠른 양산형 전륜 구동 자동차였다. 비록 내장재를 모두 탈거해 중량을 줄여 ‘꼼수’를 썼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골프 GTI의 질주 본능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자동차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GTI 외의 일반 사양에서도 주목할 만한 고성능 차종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5세대,  2004년에 등장한 R32다. 최고 출력 250h, 최대 토크 32.6kg∙m를 발휘하는 3.2리터(3,189cc) V6 엔진을 장착한 이 자동차는, 양산차 최초의 듀얼클러치 변속기인 6단 DSG 변속기를 엔진과 결합해 파워트레인을 완성했다. 진정한 ‘핫해치’의 탄생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성능을 바탕으로 5세대 기종부터는 해치백 무덤이라는 한국 시장에서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미국 발 디젤게이트 파문에도 폭스바겐은 2016년, 토요타를 밀어내고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랭킹 1위를 지켰다. 가솔린 엔진 파워트레인과 전동 파워트레인이 전화위복의 힘이었다. 특히 2017년 4월부터 선보인 7세대 페이스리프트 기종에서는 148hp의 최고 출력과 25.5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는 새로운 1.5리터(1,498cc) 가솔린 엔진을 선보였다. 직렬 4기통인 이 엔진은 엔진의 휴지 시, 2개의 실린더를 쉬게 하여 연비의 개선 뿐만 아니라 112g/km의 낮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구현에도 성공했다. 이러한 흐름은 고성능 기종인 227hp의 GTI의 개발 방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40여년 간 군림해온
해치백의 절대강자

골프는 자동차 디자인에 있어서도 한 획을 그었다. 직관적이고 심플한 차체 디자인은 그 자체가 새 바람이었다. 자사의 비틀을 비롯해 프랑스 시트로엥의 트락숑 아방 등 둥글둥글한 타입의 차체를 가진 기존 자동차들과 전혀 다른 간결한 디자인 언어는, 젊은 소비자들에게도 크게 어필했다.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골프 1세대의 디자이너는 조르제토 주지아로였다. 당시 카로체리아라고 불리는 섀시 공방 출신의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은 차체를 유선형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역시 카로체리아 출신인 주지아로도 커리어 초기에는 유려한 곡선을 선호했으나, 골프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한 셈이다. 참고로 그는 골프 이후의 현대자동차 포니, 로터스 에스프리 등을 통해 직선적 디자인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으며 인기를 얻었다. 직선 중심의 차체는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승차 및 적재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골프의 디자인적 장점은 3도어와 5도어, 그리고 왜건 등으로의 변용을 통해 상품성을 다양화하고, 다변화하는 자동차 소비자들의 욕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3도어는 스포티한 드라이빙을 즐기는 이들의 구미에 부합하는 탄탄한 선회 시 강성이 돋보였고, 5도어 및 왜건은 승차와 수납 공간의 확보를 통해 가족 중심의 자동차로 인기가 높았다. 특히 1세대의 중반인 1979년부터 4세대의 단종 1년 전인 2002년까지 카브리올레(컨버터블) 버전도 선보였다. 골프 카브리올레는 후에 2011년 재등장했는데 이는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오픈 에어링이라는 장점으로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골프는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자동차 중 하나다. 이미 2세대 골프의 출시 때 집계된 누적 판매량이 이미 1000만 대를 넘어선 바 있으며, 현재도 해당 세그먼트 판매량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기종이다. 이제 단순히 골프의 판매량을 세는 것은 무의미하다.

골프를 뉘르부르크링에서 제칠 수 있는 자동차도 있고 디자인이 더 멋진 자동차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골프가 없었다면 해치백, 그리고 해치백을 고성능화해 달리기의 재미를 구현한 핫 해치의 시장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해 i30의 출시 당시 현대자동차의 곽진 부사장이 ‘골프의 판매 중지가 아쉽다’고 한 것은, 골프가 43년간 만들어놓은 시장의 가치를 반증하는 메시이기도 했다.

골프는 현재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EV 등 전동 파워트레인 영역으로의 순탄한 이동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면 골프의 역사책이 덮일 날은 당분간 도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김상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