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었을 때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자동차 산업에서는 다르다. 과거의 특별한 자동차들은 오늘날에도 자동차 제조사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따라서 제조사들은 이러한 자동차들을 현재의 방식으로 해석한 자동차나 오마주 차량을 선보인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각 제조사가 자사의 영광을 지닌 자동차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선보이거나 오마주로 제작한 사례를 살펴본다.
레이스 복귀 기념작, 재규어 F 타입 프로젝트 7
재규어의 F 타입 프로젝트 7은 2014년 영국 굿우드 페스티벌에서 공개된 바 있다. 이 자동차는 1950년대 레이스에서 강자로 군림했던 D 타입의 탄생 60주년을 기념한 기종이었다. D 타입은 특히 르망 내구레이스에서 1955년부터 3년 연속으로 우승하는 등, 재규어의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기종으로 자리잡고 있다.
재규어는 자사의 5.0리터(5,000cc) V8 슈퍼차저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결합한 F 타입의 파워트레인을 베이스로 D 타입을 부활시켰다. 그 이름은 F 타입 프로젝트 7였다. 전세계 250대 한정 판매를 전제로 전 공정 수작업을 통해 생산된 자동차인 만큼, F 타입을 기본으로 했지만 동력성능을 비롯한 많은 면에서 향상이 이루어졌다. 567hp(6,500rpm)의 최고 출력과 69.4kg∙m의 최대 토크도 기존 F 타입보다 높은 수치다. 0→100km/h까지 3.9초만에 가속이 가능한데 이는 F 타입 쿠페의 4.2초보다 빠른 기록이다. 제한 최고 속력은 300km/h에 달한다. 후륜 구동 방식이며 토크 벡터링 시스템은 기존 F 타입과 같다.
기존 F 타입보다 높은 퍼포먼스를 구현하기 위해 경량화를 구현했다. 공차 중량은 1,585kg으로 F타입의 컨버터블보다 100kg 이상 가볍다. 카본 파이버를 이용해 맞춤 제작한 에어로다이내믹 파츠와 전∙후륜 모두 더블 위시본 방식인 서스펜션 부품에서의 경량화를 통해 이루어낸 성과였다.
이 자동차는 2015년 서울모터쇼에서도 선보였다. 매회 해외 제조사의 서울모터쇼 참가 의지나, 의미 있는 차종의 전시 제외 등으로 입방아에 올랐던 점을 감안하면 재규어는 서울모터쇼에 성의를 표해 왔던 셈이다.
긴 역사만큼 많은 기념 차량, BMW
BMW는 2016년 기업 설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역사가 긴 만큼 기념할 기종도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BMW는 이를 마케팅에 적절히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차종이 2016년에 발표한 2002 오마주다. 이 자동차는 BMW 최초의 터보차저 장착 양산차였던 02시리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차량으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M2 쿠페(F87)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02 시리즈는 1966년, 1600의 후속으로 개발되었으며, 지난 해로 50주년을 맞이했다. BMW 그룹의 디자인 담당 사장인 애드리언 반 호이동크는 02 시리즈를 가리켜 실질적인 BMW의 성공시대를 연 자동차라고 평했다. 차체 외형은 물론 파워트레인과 동력 성능의 사양도 다양해, 선택의 폭도 많았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여기에 터보 차저를 장착해 후륜 구동 레이아웃과 더불어 BMW 특유의 운전 재미를 본격적으로 구현한 자동차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2002는 외관부터 화제를 모았다. 시각적으로 넓은 폭의 프론트 범퍼와, M2를 기반으로 했지만 M2와 달리 에어 인테이크가 가운데로만 정리되어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전면 이미지를 전체적으로 구획화하고 있는 윤곽선도 특징적이다. 헤드램프도 하나씩만 제일 바깥쪽으로 정리되어 있다. 디테일 면에서는 현대적 재해석이 따랐지만 기본적으로 1960년대에 디자인된 02시리즈의 전면부 디자인 언어 중 핵심적인 특징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뒷모습에서는 02 시리즈와 큰 유사성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현재의 M2에 더 가까운 면모다. 날카롭게 처리된 트렁크의 리드나 머플러 디자인이 그러하다. 그러나 번호판 우측에 자리한 엠블럼은 02 시리즈와 같은 자리다. 가장 중요한 엠블럼의 위치를 과거와 같이 함으로써 진정한 ‘오마주’의 의미를 드러낸 셈이다. BMW는 2016년 페블비치에서 열리는 클래식카 경연대회인 <콩쿠르 드 엘레강스> 출품용의 오렌지와 블랙 투톤을 주조로 한 2002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엔진 제원 및 동력 성능은 M2와 동일하다. 최고 출력 370hp, 최대 토크 47kg∙m를 발휘하는 3.0리터(2,979cc) 트윈 터보 엔진에 7단 DCT를 결합한 파워트레인을 갖고 있다. 서스펜션은 전륜 맥퍼슨 스트럿, 후륜에 5링크를 적용했다. 2002의 가속 시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M2 쿠페의 경우 0→100km/h 가속 시간이 4.3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년여만에 부활 선언한 르노의 고성능 디비전, 알피느
알피느는 원래 르노의 엔진을 활용해 레이싱카를 제작하던 독립된 제조사였다가, 1973년 르노의디비전으로 편입되었다. 알피느는 르노 편입 전에도 모터스포츠에서 영감을 얻은 기념비적 차종들을 다수 개발 및 생산해 왔다. 르노의 0.7리터(747cc) 경형 자동차인 4CV에 기반한 A106으로 포문을 연 알피느는, 1962년에 자사를 대표하는 자동차 A110을 선보였다. 최고 출력 95hp(6,500rpm)의 1.1리터 엔진을 장착한 RR(뒤 엔진, 후륜 구동) 레이아웃의 이 자동차는 이후 초대 몬테카를로 랠리의 우승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강했던 것은 A110뿐만이 아니었는데 R16 차량을 기반으로 한 알피느는 1971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1-2-3 피니시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외에 1978년 르망 내구레이스 우승 등으로 꾸준한 퍼포먼스를 보여 왔다. 하지만 모터스포츠에서의 성적과는 별개로 BMW의 M이나 메르세데스 벤츠의 AMG와 같은 상품성의 구현에 실패한 알피느는 1995년 더 이상 새로운 기종을 생산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2017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알피느는 부활을 선언하고 신차를 공개했다. 이 자동차는 바로 그들을 있게 한 자동차였던 A110의 새로운 기종이었다. 단순히 모터쇼용 콘셉트카가 아니라, 엄연히 2017년 하반기 생산을 시작해, 2018년 유럽 판매가 예정되어 있는 양산차다. 이 자동차는 A110의 전통을 이어받아, 전장 4,178㎜, 휠베이스 2,419㎜, 전폭 1,798㎜, 전고 1,292㎜, 공차중량 1,103kg에 불과한 미드십 경량 쿠페로 태어났다. 후륜 구동 방식이며 서스펜션은 전∙후륜 모두 더블위시본으로, 레이싱카의 유전자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엔진은 직렬 4기통 1.8리터 가솔린 엔진으로, 최고 출력 249hp(6,000rpm), 최대 토크 32.6kg∙m의 동력성능을 발휘한다. 225hp/1,000kg의 무게 당 마력비, 0.32의 공기저항 계수 등의 장점, 그리고 44:56의 전후 무게 배분을 바탕으로 0→100km/h까지의 가속 시간이 4.5초에 불과하다. 이러한 퍼포먼스를 발휘하면서도 6.2L/100km(약 16.1km/L)의 복합 연비를 발휘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140g/km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디에프에 위치한 알피느의 공장은 지난 1995년 알피느 자동차의 생산은 중단했지만, 그렇다고 명맥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세계 핫해치 마니아들의 지지를 얻어 온 클리오 RS와 클리오 V6의 산실이기도 하다. A110의 새로운 기종을 계기로, 알피느가 상품성 있는 고성능 디비전으로 도약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포드, 역사 속 다목적 차량의 부활
포드는 2017년 1월,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오토쇼에서 미래 모빌리티 및 신기종 전략을 공개했다. 포드는 이 발표를 통해 자사의 다목적 자동차 중 픽업 트럭인 레인저와 SUV 브롱코를 재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대해서는 잠시 포드의 전반적인 그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포드는 2020년까지 전동 파워트레인을 전 영역으로 확대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특히 그 대상에는 가스 거즐러(연료 낭비가 심한 가솔린 자동차)로 악명 높은 포드의 F-150 픽업 트럭 등 기함급 자동차들도 포함된다. 그러면서 자연히 중형 픽업트럭의 존재가 필요해지게 되었다. 또한 SUV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시장에서 이 세그먼트의 강세는 두드러질 뿐만 아니라, 아시아 특히 중국 시장에서의 SUV 판매는 그룹 전체의 이익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해졌다.
포드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전혀 새로운 신차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과거 명성을 누린 차종의 이름을 부활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이는 몇 가지의 효과가 있다. 새로운 제품의 각인에는 시간이 걸리고 잊혀지는 것은 빠른 현재 산업 및 소비 트렌드에서 모험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또한 유명한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선택이 낭비가 아님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소비 트렌드에도 부합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포드는 레인저를 2019년부터 자국 내 판매 라인업에, 2020년부터는 브롱코를 글로벌 라인업에 추가할 예정이다. 두 기종 모두 미시건 주 웨인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다.
포드의 레인저는 1983년부터 2011년까지 생산된 미국 내수용 차종과, 일본 마쯔다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탄생한 차량으로 1971년부터 현재까지 생산된 글로벌 차종 두 가지가 있다. 새로이 선보일 포드의 레인저는 마지막으로 생산되었던 코드 네임 T6의 리디자인 기종이다. 참고로 레인저는 포드의 중형 다목적 차량들과 그 부품을 공유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재생산을 발표한 SUV 브롱코 Ⅱ이기도 하다.
포르쉐의 다운사이징 기수, 718 박스터 & 카이맨
어쩌면 포르쉐는 다운사이징에 있어 가장 선구적인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최고의 동력 성능을 구현하는 데 집중해 왔다. 2016년 상반기에 출시한 포르쉐의 718 박스터 & 카이맨은, 싱글 터보차저를 적용한 2.0리터(1,988cc) 수평대향 다운사이징 엔진을 얹어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전 세대(981C)까지 찾아볼 수 있었던 2.7리터(2,706cc) 자연흡기 엔진을 라인업에서 제외해, 포르쉐 골수팬들로부터 ‘원성’을 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