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특히 산업혁명 시대 이후의 인간은 자연의 많은 것을 자신에게 편리하도록 바꾸어 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도로다. 산업혁명 시대 이전의 도로는 인간과 동물이 공유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도로는 자동차를 비롯한 이동수단의 연료를 적게 쓰고,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때로는 도로 인근에 거주하는 인간도 희생되는 도로에서, 야생동물의 안위가 보장되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러한 도로를 생태 중심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운전자 개개인이 로드킬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알려는 노력과 예방 의지가 필요하다.
한국의 로드킬 현황은?
OECD 통계 조사에 의하면, 2015년 한국의 100만 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약 91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웃인 일본의 38명에 비하면 높은 수치지만, 그나마 OECD 국가 중 최상위는 아니며, 이마저도 상당히 개선된 수치다. 이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한 많은 노력이 진행되었던 까닭이다.
로드킬은 도로에서 자동차와 동물의 충돌로 인한 동물의 죽음을 지칭하는 용어다. 사실 한국에서 로드킬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찾는 과정에서 두드러진 사안이다. 보행자와 자동차 사이의 사고는 단지 운전자나 보행자 어느 쪽의 부주의라기보다, 역시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생태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도로 시스템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생긴 것이다.
이에 따라 로드킬이 일어나는 다양한 원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동물의 종에 따른 반응 특성, 도로 주변환경과 식생적 요인에 대한 연구, 생태통로 등 로드킬 저감시설에 관한 연구 및 해외 로드킬 사례 연구 등이 대표적인 분야다. 지난 3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로드킬은 한해 평균 2,000여 건으로 알려져 있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10년 전인 2007년 한 해 로드킬이 5,700여 건(환경부 통계)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나마 상당 수준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로드킬은 단순히 한 마리의 동물이 죽는 사고가 아니라 복잡한 성격을 가진 사고다. 우선 죽은 동물은 어쩔 수 없다손치더라도, 주행 중인 운전자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로드킬을 피하기 위한 급조적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는 차량 전복 등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운전자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더라도 차량에 발생하는 상당한 피해를 무시할 수 없다. 물론 근본적으로 동물의 서식지 환경의 파괴로 인해 인근 지역 생태계 건전성을 해치기도 한다.
자동차의 복잡한 보상 문제도 있다. 교외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로드킬은 멧돼지나 고라니 등 체중이 무거운 포유류와 자동차의 충돌로 일어난다. 따라서 자동차의 속도와 무게, 동물의 체중이 맞부딪치며 차량에 큰 충격이 가해진다. 문제는 책임 소재를 찾기가 난망하다는 점이다. 지난 2010년 한 운전자가 로드킬로 인해 발생한 차량 파손에 대해,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도로공사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관계기관이 평소 로드킬 예방 활동을 했다는 사유로 기관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따라서 운전자는 오롯이 자차 보험을 통해 이를 해결해야 하며, 피해 규모에 따라 서는 보험료 할증도 피할 수 없다.
로드킬 예방, 어떤 법령으로 관리되고 있을까?
로드킬은 이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므로, 국가는 법률적 장치를 두고 이를 관리하고 있다. 자연환경보전법이 그것이다. 다만 이 법의 세부 내용들은 로드킬 자체를 적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야생동물의 생태 보호 등을 포괄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를 기술하고 있다. 예컨대 해당 법 45조의 경우 생태통로 설치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국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능동적으로 야생동물의 생태 단절 지역을 연구하고, 이를 연결하는 생태통로를 설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만약 생태통로에 대한 설치 요청이 있다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이를 설치해야 할 의무도 있다. 예산이 부족한 자치단체에는 54조의 규정을 적용한 국고 보조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법은 멀리 있어 아름답고, 현실은 가까이 있어 비극적이다. 물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진행되긴 했지만, 생태 통로는 고속도로나 우선순위의 보호종이 서식하는 국립공원 도로를 중심으로 설치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지방도로는 야생동물 출현이 잦음에도, 생태통로 설치 비율은 고속도로나 국립공원보다 떨어진다. 또한 최근에는 도시 삼림 지역에도 대형 포유류 개체수가 늘어났지만, 인근 환경조건을 고려했을 때 별도의 생태통로를 두기 어려운 실정이다. 번화가라 할 수 있는 광화문이나 홍대를 휘저은 멧돼지 등의 소식은 이러한 허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렇다고 해당 법령을 급히 수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로드킬의 심각성에 대해 고민해 온 많은 이들이, 로드킬을 예방할 수 있는 시설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예컨대 도로시설물을 제작하는 한 기업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직각으로 반사해 도로 외곽으로 보냄으로써, 도로로 향하려던 동물의 이동 경로를 바꾸는 장치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를 국가, 혹은 지자체 예산으로 설치하기 위해서는 그 효과와 타당성에 대한 조사도 진행되어야 한다. 법령과 절차적인 해결법에는 이처럼 시간이 필요하다.
로드킬, 아는 만큼 피할 수 있다
결국 로드킬을 피하기 위해서는 개별 운전자의 노력이 1차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본격 레저 시즌인 6월은 로드킬 횟수가 가장 높은 시기다. 야생 동물의 활동도 활발하지만 그만큼 야생 생태계와 가까운 곳으로 운행하는 차량들이 많은 까닭이다. 따라서 운전자가 자신의 행선지의 환경을 어느 정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야산과 하천, 혹은 민가가 있고 도로에 중앙분리대가 없는 경우 로드킬의 발생률이 높은 편이라고 해당 분야 연구자들은 조언한다. 야산은 보금자리, 강가나 민가는 먹이 활동을 하는 장소인 까닭이다. 야생동물들이 중앙분리대를 학습에 의해 장애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중앙분리대가 있는 구간은 피해 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즉 하천을 끼고 달리는 편도 1, 2차선 내외의 협소한 지방도가 대표적인 셈이다. 이러한 곳을 야간에 이동한다면 서행하며 전방 120도 정도의 좌우측 상황도 살필 필요가 있다.
야생 동물이 아니더라도, 가축을 기르는 농장이 있는 곳 역시 주의해야 할 곳이다. 특히 장마철에는 지반의 약화로 인해 울타리 등이 약해지는 경우, 동물이 탈출하는 경우도 있다. 포털의 지도를 통해 주요 행선지 주변에 사육 시설 등을 미리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후처리, 강제조항은 없지만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이렇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로드킬을 피할 수 없었다면 침착하게 대처해야 한다. 행동 요령은 자동차 사고와 같다. 야간이라면 최소 2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안전 삼각대를 설치하거나, 동승객이 있다면 휴대전화의 플래시 등을 이용해 후속 차량과의 2차 사고를 막아야 한다.
로드킬을 당한 동물의 사체 처리는 사실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체격이 큰 동물의 사체를 방치할 경우 뒤따르는 차들의 안전에 큰 위험 요소가 된다. 야생동물의 기생충 등으로부터 감염될 우려도 있으므로 최대한 사체의 손상 부위를 피해 도로변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나 혼자 운전하던 중에, 몸무게가 성인 남성 서넛을 합쳐놓은 것보다 무거운 멧돼지 등과 충돌하게 되면 이러한 사후처리가 무척 어렵다. 이 때는 지역번호+120으로 전화해, 국도 및 지방도 자치구 환경신문고로 신고하면 된다. 참고로 예전에는 129번이었으나 번호가 변경되었음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속도로인 경우에는 1588-2504로 전화해, 한국도로공사에 신고해도 된다.
동물이 살아 있다면 다행이지만, 이 경우 역시 곤혹스러울 수 있다. 내버려두자니 죽을 것 같고, 그냥 지나가자니 마음이 찜찜해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다. 특히 자녀가 타고 있다면, 부모가 생명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볼 것이기에 더욱 난감해질 것이다. 이럴 때는 각 지역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연락해야 한다. 그러나 참고로 야생동물 구조센터는 동물이 죽은 경우에는 출동하지 않는다. 즉 사체의 ‘처리’를 할 것인지, 살아 있는 동물을 ‘구조’할 것인지를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참고로 최근에는 ‘로드킬 등록 통계’ 어플리케이션도 나와 있다. 이 앱에는 부상당한 동물을 신고할 수 있는 지역별 동물 구조관리센터 번호가 나와 있다.
사람의 목숨과 동물의 목숨은 모두 한 번 없어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라는 점 앞에서 평등하다. 효율성을 중시했던 한국의 행정 역시 이러한 점을 자각해 가고 있다. 그러나 도로는 국가 기간시설이고 이를 보는 관점의 변화는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결국 조금이라도 로드킬로 인한 동물과 차량의 피해를 줄이는 것은 개별 운전자의 노력이다. 하지만 그 노력이 모여 로드킬이라는 비극을 큰 틀에서 바꿀 수도 있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