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밀리터리 덕후’ 라면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군용차나 전차를 개인 주차장에 소유하고 싶은 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군용차는 국가안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민수용으로 구매할 수 없다. 따라서 방위산업을 맡은 일부 자동차 제조사들은 해당 차량을 민수용 규정으로 개조하거나 퇴역한 군용차량을 일반인에게 판매하기도 한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민간인도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군수제조사의 차량들에 대해 소개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전장을 누볐던 G-5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G클래스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다. 즉, G클래스는 군용차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현행 G클래스만 하더라도 위장만 잘한다면 군용차로서 손색없는 외관과 성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호주 국방부는 G클래스로는 부족했는지, G클래스에 2개의 바퀴를 추가한 G320 CDI 6X6 제작을 의뢰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레이아웃을 기반으로 선보인 민수용 차량이 바로 G63 AMG 6X6이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G63 AMG 6X6는 6륜 구동 차량이며, 장르는 픽업트럭에 가깝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G63 AMG 6X6를 ‘가장 사치스러운 오프로더’로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이 차량에는 타이어의 공기압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압력 제어 시스템과 어떤 바퀴로든 구동력의 100%를 전달할 수 있는 5개의 전자식 LSD(차동제한장치) 등이 장착된다. 또한, G63 AMG 6X6는 최대 52°의 경사로를 등판할 수 있으며, 이탈각(길이 내리막에서 평지로 바뀔 때 뒷범퍼가 땅에 닿지 않는 각도)은 53°에 달한다. 참고로 일반적인 SUV의 접근각과 이탈각은 30°~40°내외 수준이다.
G63 AMG 6X6는 전장 5,875mm, 전폭 2,110mm, 전고 2,210mm, 휠베이스(1열축과 3열축 기준) 4,196mm라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며, 공차중량 역시 몸집만큼이나 육중한 3,850kg에 달한다. 그럼에도 최고 출력 544hp, 최대 토크 77.5kg·m를 발휘하는 V8 5.5리터 트윈터보 엔진 덕분에 정지상태에서 60mph(96km/h)까지 7.8초 만에 도달한다. 가격은 영국 기준으로 37만 파운드(한화 약 5억 4,000만 원)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군수 기업인 패러마운트(Paramount)는 총 6종류의 장갑차와 10종류의 군용선박, 8종류의 항공기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 중 머로더(marauder)는 패러마운트 그룹 내에서 유일하게 민수용으로도 판매하는 장갑차다.
‘약탈자’라는 의미답게 머로더는 외모에서부터 장갑차의 DNA를 보여준다. 머로더의 전장은 6,440mm, 전폭은 2,660mm, 전고는 2,745mm에 달한다. 또한 이중철판으로 제작된 차체 덕분에, 차체의 대부분이 TNT 8kg이상의 폭발력을 견뎌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지뢰 등에 취약하기 마련인 차체의 하부도 14kg의 TNT 폭발을 견딜 수 있는 설정이다. 최대 탑승인원은 운전자를 포함해 총 10명이다.
민수용은 군용으로 사용되는 머로더에서 12.7mm의 중기관총 등 각종 화기를 제거한 상태이다. 무기를 제외하면 완벽한 험로주행 및 레저용 차량으로 변모하는 셈이다. 민수용 머로더는 영국의 유명 자동차 버라이어티 쇼인 <탑기어>에 등장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1954년에 설립된 폴라리스는 ATV와 스노우 모빌, 모터사이클, UTV 등의 생산으로 정평이 나있는 제조사다. 이들은 이와 같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일부 제품군을 미군에 납품하고 있기도 하다. 이 중 MV850은 폴라리스의 다목적 차량 중 성능 면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기종이다.
MV850은 오프로드 주파성능과 효율이 우수하다. 우선 MV850의 전장은 2,423mm, 전폭은 1,201mm, 전고는 1,524mm, 건조 중량(각종 오일류, 냉각수 및 연료 등을 제외한 무게)은 484kg에 불과할 정도로 작고 가볍다. 그러나 MV850의 견인력은 자신의 체중보다 200kg 정도 무거운 680kg에 달한다. 또한 보닛에는 90kg를, 캐빈의 뒤쪽에는 180kg의 짐을 적재할 수 있다. 여기에 연료탱크의 용량이 국산 소형차와 비슷한 수준인 44.5L에 달해, 항속거리가 긴 편이다. 무엇보다 MV850을 유명하게 한 것은 방탄성능이 더해진 에어리스 타이어라고 할 수 있다. 방탄 에어리스 타이어는 선택 사양이다.
이와 같은 MV850의 DNA를 갖고 있는 민수용 차량으로는 WV850을 예로 들 수 있다. MV850과 WV850은 맨 앞 머리글자가 ‘M’에서 ‘W’로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도색 이외에는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실제 기능상으로도 WV850 역시 MV850과 같은 콤팩트한 제원에 강력한 견인력을 갖고 있으며, 실용적인 적재성 덕분에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WV850의 가격은 1만 5,000달러(한화 약 1,670만 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가즈(GAZ)는 러시아의 자동차 제조사로, 소형부터 대형에 이르는 트럭과 버스, 각종 자동차 부품을 제작한다. 가즈의 전신은 1932년 소련 시절, 포드와 협업해 설립한 나즈(NAZ)이며, 1933년에 가즈로 명명했다. 가즈는 포드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갔다. 그 결과 8개의 지역에서 13개의 공장을 둘 정도로 성장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가즈는 2001년에는 방산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러시아어로 호랑이라는 의미를 가진 소형전술차 띠그르(Тигр)가 가즈의 대표적인 군용차다.
띠그르는 전장 5,700mm, 전폭 2,400mm, 전고 2,400mm의 크기와 7,200kg에 달하는 공차중량을 자랑한다. 이는 미군의 험비, 프랑스군의 셰르파 등을 압도하는 제원이다. 그만큼 방탄 성능도 우수하며 극한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전장에서는 기갑차량과 특수목적차량, 미사일운반차량 등 다양하게 개조해 활용할 수 있으며, 7.62mm의 기관총과 30mm 유탄인 AGS-17을 장착할 수 있다. 띠그르는 운전자를 포함해 총 8명까지 수용 가능한 험로 주파용 다목적 차량이다. 띠그르는 최고 출력 사양이 180hp와 215hp 두 가지로 나뉘는 미국 커민스사의 직렬 6기통 5.9리터 디젤 터보 엔진 또는 최고 출력이 197hp인 가즈의 V6 3.2리터 디젤 터보 엔진을 장착한다. 덕분에 띠그르는 오프로드에서 80km/h로, 온로드에서는 140km/h의 속력으로 주행할 수 있다. 항속거리는 1,000km에 이르며, 최대 견인력은 4,000kg에 달한다. 또한, -14°~50°의 기온에서도 엔진의 시동이 가능해 러시아의 혹한 환경에서도 전술을 펼칠 수 있다. 띠그르의 경사로 접근각과 탈출각은 52°에 달하는데, 이는 G63 AMG 6X6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도강능력은 1.2m다.
2008년, 가즈는 이와 같은 띠그르의 혈통을 기반으로 민수용 차량인 티그르2를 생산했다. 허머가 험비(HMMWV)에 몇몇 편의장치를 장착하고 H1과 H2, H3를 생산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티그르2는 두터운 방탄 장갑을 벗어 던진 덕분에 전폭과 전고가 100mm씩 줄어들었고, 중량 역시 4,400kg이나 가벼워졌다. 덕분에 동일한 엔진을 사용하면서도 최고 속력을 160km/h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여전히 무지막지한 차체 크기와 엔진 때문에 연비는 러시아 기준으로 15L/100km(한국식 표기법으로 환산 시 6.6km/L)에 불과하다. 가격은 27만 달러, 한화로 약 3억 원이다.
민간인이 군용차를 소유하려는 목적은 다양하다. 엄청난 부호라면 단순한 취미로, 혹은 경호용으로, 정치적 상황이 불안한 국가라면 보안용으로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각종 무기들과 무기를 거치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제거되므로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외양만으로도 범죄 의도를 품고 있는 이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차량의 제조사와 구매자들은 민수화한 군용차를 통해 테러와 같은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울러 전시에 가장 먼저 징집될 차량이라는 점도 확실하다.
글
이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