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4일, 캐딜락이 플래그십 세단인 CT6의 2.0 터보(이하 CT6 터보)기종을 국내에 출시했다. 수입원인 GM코리아 측은 3.6리터 자연흡기 기종으로 이미 브랜드 누적 판매량의 40%에 육박할 정도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CT6에, 엔트리 기종을 전략적으로 추가해 2017년 세일즈 성적에 방점을 찍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CT6 터보는 기존 3.6리터 자연흡기 차량과 달리, 국내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기종들이 만만치 않다. 캐딜락 브랜드의 연간 판매량 2,000대라는 GM 코리아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CT6 터보가 경쟁해야 할 기종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CT6의 공식 판매가격은 6,980만 원으로 책정되었다. 3.6리터 기종의 프리미엄 트림인 7,880만 원보다 약 900만 원 저렴한 가격이다. 전장 5,185㎜, 전폭 1,880㎜, 전고 1,485㎜, 휠베이스 3,109㎜로 크기는 동일하지만, 공차중량은 1,735kg으로, 215kg 가볍다. 엔진의 크기는 물론, 4륜 구동을 택한 3.6리터 기종과 달리 CT6 터보는 후륜 구동 레이아웃을 택한 까닭이다. 직렬 4기통 2.0리터(1,998cc) 터보 엔진은 269hp(5,600rpm)의 최고 출력과 41kg·m(3,000rp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며, 8단 자동변속기와 결합되어 파워트레인을 이룬다. 복합 연비는 10.2km/L(도심 9km/L, 고속 12.2km/L)이다.
CT6 터보에는 3.6리터 기종에 적용된 라디에이터 그릴 크롬 장식이 없고, 듀얼 트윈 머플러 대신 트윈 머플러가, 20인치의 휠 대신 19인치 휠이 장착되었다. 또한 CT6의 기술적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서스펜션의 마그네틱 라이드 콘트롤 댐퍼(자성체를 띤 유동체를 넣고, 이에 전기를 흐르도록 해 감쇠력을 조절하는 방식의 댐퍼)가 빠졌다.
그러나 안전 및 실내 편의 사양,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3.6리터 기종과 동일하다. 주요 편의 기능으로는 앞좌석 16방향 전동 시트, 앞좌석 열선 및 통풍 시트, 뒷좌석 열선 시트, 어댑티브 리모트 스타트(원격시동), 10.2인치 터치스크린 내비게이션, 10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보스의 카오디오 시스템 등이 있다. 다만, 가격의 합리성을 강조한 기종인만큼 CT6 V6 3.6 플래티넘(V6 3.6의 상위 트림)의 서스펜션 시스템에 장착된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과 나이트 비전, 액티브 리어 스티어링, 마사지 시트, 4존 오토 에어컨, HUD,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은 제외되었다.
CT6는 엄밀히 전장 5,000㎜의 F 세그먼트 세단이지만, 실질적인 경쟁상대는 유럽의 E세그먼트 세단일 것이다. 실제 GM코리아 측은 CT6 터보의 경쟁력으로 ‘독일의 중형 럭셔리 차량보다 최대 400만원 이상 낮아진 가격’을 꼽을 정도로, 해당 세그먼트와의 직접적인 경쟁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현재 해당 세그먼트의 수입차종 중 국내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는 자동차는 벤츠의 E 클래스로, 그 중에서도 E300을 꼽을 수 있다. E300의 차체 크기는 전장 4,925㎜, 휠베이스 2,940㎜, 전폭 1,850㎜, 전고 1,460㎜에 달한다. 여기에 직렬 4기통 2.0리터(1,991cc)터보 엔진은 245hp(5,500rpm)의 최고 출력과 37.7kg·m(1,300~4,000rp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한다. 변속기는 경쟁 기종 중 가장 단수가 높은 9단 자동변속기를 채용했다. 연비는 복합 10.8km/L(도심 9.6km/L, 고속 12.6km/L)이다.
E300의 하위트림인 아방가르드의 가격은 7,620만 원으로, CT6 터보가 640만 원 싸다. 여기에 미국 자동차 제조사의 세단이 그러하듯 동급의 유럽 제조사 기종보다 넓은 실내도 메리트로 꼽히는데, 이는 세단을 가족 중심 차량으로 여기는 국내 정서에도 부합한다. ‘독일차’, ‘메르세데스 벤츠’라는 가치보다 합리성을 선택한다면 CT6 터보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E세그먼트의 또 다른 강적으로는 BMW의 530i를 들 수 있다. 252hp(5,200~6,500rpm)의 최고 출력과 35.7kg·m(1,450~4,800rpm)를 발휘하는 직렬 4기통 2.0리터(1,998cc)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해당 기종은 11.2km/L(도심 9.8km/L, 고속 13.4km/L)로 경쟁 기종 대비 우수한 복합 연비가 강점이다. 특히 가격 면에서는 CT6도 쉽게 볼 수 없는 상대다. 530i의 가장 저렴한 트림인 M스포츠 패키지의 가격은 7,060만 원으로, CT6 터보보다 불과 80만 원 비싼 가격이다.
그렇다면 디자인과 국내 시장에서의 희소성이라는 키워드로 독일차와 경쟁하는 영국의 E세그먼트 세단인 재규어의 XF는 어떨까? XF의 전장은 4,954㎜, 전폭 1,880㎜, 전고 1,457㎜, 휠베이스 2,960㎜로, 유럽의 E세그먼트 기종 중에서 차체가 가장 크다. XF 역시 직렬 4기통 2.0리터(1,997cc)터보 엔진을 장착했으며, 최고 출력은 250hp(5,500rpm), 최대 토크 37.2kg·m(1,750~4,000rpm)를 발휘한다. 변속기는 8단 자동변속기를 채택한다. 하지만 복합 연비가 10.1km/L(도심 8.9km/L, 고속 12.2km/L)로 유럽 E세그먼트 중 가장 낮으며 CT6 터보보다 0.1km/L 낮다. 하지만 프레스티지 트림의 가격이 6,550만 원으로, CT6 터보보다 저렴하다. 부쩍 늘어난 독일차 속에서 개성을 찾고 싶은 유저들의 ‘간택’을 노린다면 직접 경쟁해야 할 기종이라 할 수 있다.
CT6 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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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벤츠 E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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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530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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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XF 25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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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휠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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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5 / 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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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5 / 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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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6 / 2,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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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4 / 2,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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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속기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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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 자동변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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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단 자동변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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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 자동변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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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 자동변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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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출력(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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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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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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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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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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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토크(k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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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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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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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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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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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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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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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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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6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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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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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일본의 E세그먼트 세단과의 비교는 어떨까? 우선 크기 면에서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한 차종으로는 인피니티의 Q70를 꼽을 수 있다. Q70는 전장이 4,980㎜ 전폭이 1,845㎜, 전고가 1,500㎜, 휠베이스가 2,900㎜에 달한다. 앞서 소개한 E세그먼트 중에서도 전장과 휠베이스가 가장 길다.
다만, Q70는 최고 출력 333hp(7,000rpm), 최대 토크 37kg·m(5,200rpm)를 발휘하는 V6 3.7리터(3,696cc)엔진을 탑재해, 파워트레인 면에서는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다. 고배기량 엔진인 만큼 연비도 8.7km/L(도심 7.6km/L, 고속 10.7km/L) 정도여서, 우수한 동력 성능에 혹했다가도 선뜻 고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대신 하위 트림의 가격이 5,760만원으로 판매 시작가가 가장 저렴한 편이다. 여기에 편의사양과 4륜 구동 레이아웃을 택해도 6,170만 원, 6,510만 원, 6,950만 원 선의 가격을 보인다. 아직까지는 Q70의 인지도가 크게 높지는 않지만, 가격 대비 성능이라는 가치를 보면 CT6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경쟁자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독일차를 제외하고,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다는 렉서스의 경우는 어떨까? 렉서스의 E세그먼트 세단은 GS이다. GS의 전장은 4,880㎜, 전폭은 1,840㎜, 전고는 1,455㎜, 휠베이스 2,850㎜로, 전장과 휠베이스가 동급 E세그먼트 중에서도 작은 편이다. 하지만 가격 면에서의 메리트 및 개성이 확실하다. 특히 최고 출력 245hp(5,800rpm), 최대 토크 35.7kg·m(1,650~4,400rpm)를 발휘하는 2.0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을 장착한 200t는 6,130만 원이다. 다만 GS가 펀카와 고급 세단의 접점이라는 다소 좁은 포지션을 점하고 있는 까닭에 CT6와 직접 경쟁 구도를 이룰 가능성은 높지 않다.
CT6 터보가 가장 적극적으로 구애해야 할 대상은 국산 대형세단 소비자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국산 고급 세단의 성능이나 사양 및 가격이 상향 평준화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중 기아자동차의 플래그십인 K9 은 전장이 5,095㎜, 전폭이 1,900㎜, 전고가 1,490㎜ 휠베이스가 3,045㎜로, CT6 터보 보다 전장이 90㎜, 휠베이스가 64㎜ 짧다. 그러나 5,060만 원부터 시작하는 가격과 최하위 트림에서도 제공되는 앞좌석 열선 및 통풍시트, 뒷좌석 열선시트, 스마트 트렁크, 14개의 스피커 등 다양한 편의 사양이 강점이다.
또 다른 국산차로는 제네시스의 EQ900을 꼽을 수 있다. 물론 EQ900은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나 7시리즈 등 뒷좌석 승객 중심의 럭셔리 세단과 비슷한 포지션이라는 점에서, CT6와의 직접 비교는 어렵다. 그러나 구매자들의 차량 선택이 같은 세그먼트 안에서의 평행이동이 아닌 만큼, ‘수입차 못지않은 국산차’와 ‘ 국산에 비해 부담이 적은 수입차’라는 구도로 치환하면 아예 불가능한 비교만은 아니다. EQ900의 최하위 트림은 7,500만 원이다. 이 고객들에게, 오너드리븐 세단으로서의 가치를 어필할 수 있다면 CT6 터보의 경쟁력은 충분하다. 참고로 CT6의 가격에 7%의 취·등록세를 더해도 EQ900의 최하위 트림보다 50만원가량 저렴하다.
CT6 터보는 수입 세단 중 흔히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격과 성능 모두 매력적인 기종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자동차 제조사에 대한 로망 대신 넓은 실내와 가격대비 동력성능을 기대한다면 최적의 선택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5,200mm에 달하는 CT6의 전장은, 첨단 보조장비에도 불구하고 정체가 반복되는 도심이나 좁은 길 주행 시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물론 자동차의 선택에 있어 정답은 없다. CT6 터보의 운명은, 다른 차종들처럼 소비자의 손익 계산과 그 계산 속에서 이익을 부각시켜줄 판매 정책의 역량에 달려 있다. 다른 점이라면 그 손익 계산의 변수가 될 경쟁자가 많다는 것이다.
글
이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