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시리즈의 2010년대 작품 중 가장 큰 인기를 모은 <기동전사 건담 유니콘 RE:0096>에서는 “인간은 가능성이라는 신을 만들었다”는 대사가 나온다. 어쩌면 인류가 불 전에 찾은 가장 강력한 진화의 계기도 바로 ‘가능성’이었을지 모른다. 지난 10월 25일 제45회 도쿄모터쇼가 미디어데이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자동차를 넘어서(Beyond the Motor)’라는 슬로건의 이번 모터쇼에서는 전세계의 각 자동차 제조사들이 다양한 미래 전략을 선보였다. 그 가운데 ‘가능성의 기쁨’이라는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한 혼다의 부스를 살펴보았다.
최근 몇 년 간의 세계 주요 모터쇼에서는 강력한 동력성능의 과시보다, 환경 오염물질의 배출 저감, 대체동력원의 장착 등이 화제였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자동차 제조사마다 전기 모터의 역량을 강화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나 순수전기차(EV) 기종을 하나씩 갖추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물론, 혼다 역시 인사이트 이후로 어코드, 시빅 하이브리드 등의 친환경 파워트레인의 연구 개발에 매진해왔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 200만 대 이상의 하이브리드 기종을 판매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거두어 왔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혼다는 엔진, 특히 가솔린 엔진에서 구현할 수 있는 청정성을 최대한 구현하는 것이 먼저였다. 혼다는 1970년대 CVCC(Compound Vortex Controlled Combustion, 스파크 플러그 제어식) 엔진을 개발한 이래, 다양한 방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소 효율을 높여 왔다.
혼다 부스에는 현재 생산되고 있는 가솔린 및 가솔린 엔진 기반 하이브리드 기종 중, 한국의 마니아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2세대 NSX를 비롯해, FF 레이아웃 양산차 중 뉘르부르크링 최단 랩타임 기록을 보유한 시빅 타입 R 등이 공개되어 있었다. 또한 혼다 측은 2018년 가솔린 엔진 기반의 플래그십 세단인 레전드의 페이스리프트 기종 출시 계획과 올해 북미에서 출시한 10세대 어코드를 글로벌 시장에 론칭한다는 계획도 발표해, 현장에 참석한 한국 취재진 및 참석자들의 기대를 높였다.
혼다의 ‘타카히로 하치고’ 회장은 미디어를 대상으로 한 스피치에서, 2030년까지 전 차종의 2/3를 EV화한다는 비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에는 아직 낯선 동력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기술적 단계의 경과와, 친숙성의 강조라는 과제가 있다.
우선 그 이행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자동차들은 PHEV를 비롯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의 자동차들이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클래리티가 대표적으로, EV 모드 주행거리가 100km에 달한다. 참고로 클래리티의 수소연료전지 기종인 퓨얼셀 역시 이러한 가교 역할을 맡는 기종으로, 일본 내에서 기업용 차량 및 렌터카를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다.
일본 내수용 기종이자, 혼다를 상징하는 소형 미니밴인 스텝왜건 및 N박스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차량도 현장에 전시되었다. 스텝왜건은 작은 차체에도 불구하고 넓은 실내공간을 구현한 차종으로 일본 내수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이러한 장점을 잃지 않고서도 배터리팩 등을 추가해 친환경성을 높인 점은 일본 하이브리드 시장이 가진 또 다른 가능성을 상징한다. 또한 혼다의 하이브리드 전략은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이 모두 공유하는 것으로, 모터사이클의 경우 인기 기종인 PCX에 하이브리드 동력원을 채용해 관심을 모았다.
혼다는 또한 심리적으로 전기차에 대한 이질감을 줄이고, 일상영역에서의 친밀도를 높인 전기 모빌리티도 선보였다. 인공지능형 모빌리티인 뉴비(NeuV)는 도심 소형 전기차로 얼굴 표정 또는 어조에 기초하여 운전자의 스트레스를 판단하고, 안전 운전을 지원한다. 사실, 일본에서는 이미 1990년대 말부터 인간의 표정, 어조 등을 분석하고 계량화하는 감성 공학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달해 왔는데, 그것이 혼다의 뉴비 콘셉트카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자동차 외부의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선사할 수 있도록 차량 전면의 LED 패널을 이용해 표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도 혼다의 전기 모빌리티 전략을 상징한다. 이러한 모습은 지난 9월에 열린 IAA(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도 공개되었던 어반 EV 콘셉트카, 그리고 야외 이동식 카페 테이블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하모니 스테이지 등에도 적용되어 있다.
이에 더해 하치고 타카히로 회장은 “전기차의 편의성과 친환경성 등의 장점에 운전의 재미가 묻히지 않도록 하겠다”는 포부도 함께 밝혔다. 이를 반영하는 것이 이번 도쿄모터쇼의 몇 안 되는 월드프리미어 기종 중 하나인 스포츠 EV 콘셉트였다. 스케치로만 공개됐던 이 자동차는 25일 혼다의 미디어 행사 중 베일을 벗으며 공식 데뷔를 알렸다. 어반 EV가 혼다의 1세대 시빅의 전통에 로우 앤 와이드 디자인과 미래 모빌리티에 어울리는 선을 입혔다면, 스포츠 EV는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되 보다 대담하고 강인한 요소를 구현했다. 혼다 측은 본격적으로 운전의 재미를 추구하게 될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트렌드에서 상징적인 기종으로 성장시킨다는 복안을 갖고 있기도 하다.
혼다는 도쿄모터쇼를 앞두고, 일본 내의 생산 시스템을 첨단화하여 이를 글로벌 혼다의 표준으로 삼겠다는 역량을 밝힌 바 있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는 개별 부품을 생산하는 협력사의 완전한 자회사화를 통한 협력 관계 강화와, 생산 설비의 첨단 및 전동화 등 자국 내 공장 시스템의 재정비를 진행한다. 이를 통해 혼다 특유의 장인 정신인 ‘모노즈쿠리’ 정신을 강화한다는 것이 혼다의 계획이다. 최근 글로벌 제조사들의 숙제는, 해당 수출 시장의 관세 문제와 법규 등으로 인해 전세계 각지에 설립한 공장들의 생산 품질 관리다. 혼다는 이러한 과제의 해결을 위해 정면 돌파를 선언한 셈이다.
오랜 업력을 갖고 세계적인 위상을 확보해 온 자동차 제조사들이 그러하듯 혼다 역시 많은 위기를 넘어서며 여기까지 왔다. 이번 도쿄모터쇼에서 혼다가 ‘자동차를 넘어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그러한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과 그 가능성으로 인한 기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