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차가 강하다! ‘사골’ 차종들의 생명연장 비결

20세기 후반부터 각 자동차 제조사의 주요 기종들은 일정한 주기로 페이스리프트 및 풀체인지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자동차 제조사의 특정 차종은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과거의 플랫폼이나 디자인 등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이러한 차종은 사골이라 불리며 연식 변경때마다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몇몇 자동차들이 있다. 국내에서는 르노삼성의 SM시리즈, 기아 모하비, 쌍용 렉스턴이 대표적이었다. 과연 이 사골들은 치열한 국산차 시장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살아남았을까?

착한 역주행형,
가격을 인하하라!

판매량이 낮은 사골 기종들은 중고차로서의 가치도 낮은 편이다. 때문에 중고차의 감가상각이 큰 편이고, 이로 인해 소비자 입장에서는 구매와 동시에 큰 손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성능이나 디자인적인 부분에서도 차이가 크다. 실제로 르노삼성의 SM3 2009 7월에 출시되었는데, 이는 현대자동차의 경쟁 기종이었던 아반떼 HD가 판매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아반떼가 5세대인 MD, 6세대인 AD, 심지어 AD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인 더 뉴 아반떼가 공개될 때까지 SM3는 큰 디자인 변화조차 없었다. 또한 1.6리터 가솔린 엔진의 최고 출력은 112hp에서 117hp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2010 1월에 출시된 SM5 2011 8월에 출시된 SM7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대신 르노삼성은 물가상승률과 정반대되는 가격인하카드를 꺼내 들었다. 연식변경이 될 때마다 국산·수입 가릴 것 없이 가격을 올리는 타 제조사들의 행보와는 정반대되는 셈이다. 물론 적용 차종도 합리적이었다. 매월 2,000여대 가까이 판매되는 SM6와 출시 1년 만에 판매량 2만대를 돌파한 QM6는 제외되었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SM3 SM7가 대상이었다.

실제로 르노삼성은 지난 6SM3의 가격을 75만원~115만원까지 낮췄다. 차량 가격이 1,000만원 중후반대에 형성되어 있다는 점, 판매 마진이 높지 않은 D세그먼트 차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큰 폭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개별소비세 인하까지 더해지면서 최저트림의 가격은 1,444만원, 최고 트림의 가격도 2,028만원에 불과하다. 물론 최저가 트림으로만 따지면 1,404만 원인 더 뉴 아반떼의 트림명이 더 저렴하다. 그러나 더 뉴 아반떼에 무단변속기와 15인치 휠+리어 디스크 브레이크 옵션을 더하면 1,585만원에 달한다. SM7 역시 지난 8월부터 100~160만원 인하에 돌입했다.


살아남은 차가 강하다!
‘사골’ 차종들의 생명연장 비결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 만족한다면 SM5는 가성비 ‘갑’ 세단이 될 수 있다

SM5는 가격인하대신 다양한 옵션을 기본 장착하고도 가격을 동결하는 정책을 펼쳤다. 해당 차종의 옵션은 18인치 투톤 알로이 휠과 가죽시트, 1열 파워시트 및 통풍시트, 전자식 룸미러, 2존 풀오토 에어컨 등 인기 사양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르노삼성에 따르면 이 옵션들의 가격은 약 185만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SM5의 가격은 2,155만원에 불과하다. 차체 크기는 전장 4,885, 전폭 1,860, 전고 1,485, 휠베이스 2,760㎜로 E세그먼트와 비슷하지만, 가격과 옵션은 D세그먼트와 경쟁하는 셈이다. 이러한 전략은 적중했다. 2017 6~7월까지만 해도 매월 300여대에 그치던 판매량이 2018년형의 출시 이후 800~900대까지 상승한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600~700여대로 감소하긴 했으나, 여전히 가성비 좋은 세단의 대표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노력형? 정가를 받기 위한
끊임없는 상품성 개선

사골 기종으로는 모하비를 빼놓을 수 없다. 모하비는 2008 1월에 출시되었지만 현재까지도 판매되고 있다. 지난 10 8일에는 2019년형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는 적어도 올해, 내년 초까지는 계속해서 판매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시 이후부터 모하비에겐 적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비슷한 차체 크기를 가진 베라크루즈가 있었으나, 모하비 대비 디젤 엔진의 최고 출력과 최대 토크가 낮았고 바디 형식도 모노코크였다. 휠베이스도 모하비가 90㎜더 길어 실내공간 구현에 유리했다. 이러한 덕분에 출시 이후부터 매년 8,000~9,000대의 판매량을 이어가며 국산 유일의 V6 디젤 엔진 대형 SUV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모두가 모하비를 반기지는 않았다. 지속적인 가격 상승 때문이기도 했다. 2008년 초기형 모하비의 가격은 3,310~4,400만원이었으나 2019년형은 4,138~4,805만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최고가격은 400만원 상승에 불과하지만 최저가격은 800만원이 오른 셈이다. 또한 전자식 에어 서스펜션은 요소수 탱크공간 확보 등을 이유로 적용되지 않아 유저들의 원성을 산 바 있다.

그렇다고 모하비가 변화 없이 배짱 장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현대차 유일의 바디 온 프레임 SUV라는 존재감은 그대로 유지하되 V6 디젤 엔진은 계속해서 개선되었다. 출시 초기 V6 디젤 엔진은 최고 출력 250hp, 최대 토크 55kg·m를 발휘했으나 2011년식에는 최고 출력이 260hp, 최대 토크가 56kg·m로 상승했다. 또한 2016년에는 동력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유로6 기준을 충족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6단 자동변속기가 효율이 높고 부드러운 변속감의 8단 자동변속기로, 100만원이 넘던 내비게이션 시스템 옵션이 스마트 내비게이션 UVO 3.0 기본사양으로 변경되는 등 꾸준히 상품성 개선을 이뤘다. 또한 기본사양의 직물시트가 가죽 시트로, 옵션이었던 1열 통풍 및 2열 열선시트가 기본 사양으로, 프로젝션 헤드램프가 기본 HID 헤드램프로 탑재돼 상품성이 우수해지기도 했다. 디자인이 소폭 변경된 것도 포인트다.

모하비는 이러한 구실을 통해 가격을 올려왔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가격 상승 명분을 만든 셈이다. 물론 가격 상승폭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분명 몸값은 상승할 만했다.

환골탈태형,
사골 생활 청산하고 신차로 돌아오다

쌍용 렉스턴의 사골 경력은 국내에서도 최장수에 꼽힌다. 물론 렉스턴 역시 모하비처럼 개선되어왔다. 횟수도 많았다. 뉴 렉스턴, 렉스턴 Ⅱ, 슈퍼 렉스턴, 렉스턴W까지 페이스리프트만 4번에 달한다.

그럼에도 렉스턴이 사골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려 16년간 이렇다 할 디자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즉 렉스턴부터 슈퍼 렉스턴까지 디자인에 큰 변화가 없었기도 했다. 또한 SUV명가였던 쌍용자동차가 부도, 쌍용차 사태, 상하이 자동차의 먹튀등 크고 작은 이슈로 기업의 신뢰도가 추락했다. 이는 소비자가 등을 돌리는 원인 중 하나였고, 자연스레 판매량도 감소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도중 2010년 인도의 마힌드라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했고, 적극적인 투자로 차츰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쌍용자동차는 코란도C, 렉스턴 W, 티볼리에 이르기까지 라인업을 보강했다.

그로부터 약 6년 후 인터넷에는 쌍용자동차가 제작한 SUV의 스파이샷이 떠돌기 시작했다. 공도는 물론 메르세데스 벤츠의 연구소에서 포착되기도 했다. 스파이샷 속의 자동차는 한눈에 봐도 렉스턴 W보다도 큰 덩치를 갖고 있었다. 프로젝트 명은 Y400이었고 2016 9월 양산전 최종 콘셉트카가 공개됐다.


살아남은 차가 강하다!
‘사골’ 차종들의 생명연장 비결
2017 서울모터쇼에서 공개된 G4 렉스턴

많은 유저들이 기대하던 Y400 2017 서울모터쇼에서 베일을 벗었다. 차명으로는 G4 렉스턴을 사용함으로써 렉스턴의 후속임을 강조했다. G4 렉스턴은 전장 4,850, 전폭 1,960, 전고 1,825, 휠베이스 2,865㎜라는 큰 덩치와 바디 온 프레임을 통해 강인한 이미지를 완성했다. 특히 Y400 콘셉트카의 아이덴티티를 계승한 디자인과 각종 첨단 안전사양은 진짜배기 풀체인지 기종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액티언 스포츠, 코란도 스포츠에 이어 렉스턴 스포츠라는 대형 픽업트럭을 출시함으로써 렉스턴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사골이라는 오명을 벗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올디즈 벗 구디즈라는 말은 자동차 산업계에서 덕목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자동차 생활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 등은 자동차 제조사 담당자들의 종교를 새로움으로 바꿔가고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자동차들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바탕으로 한 해 또 한 해 생명을 연장해가고 있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생명 연장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글 · 사진
이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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