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해’로 끝난 1000번째 F1 레이스, 중국 GP의 이모저모

‘어’차피 ‘우’승은 루이스 ‘해’밀튼이었다. 2019년 4월 14일 중국 상하이 지아딩의 상하이 인터내셔널 서킷(5,451 미터)에서 진행된 F1 1000번째 레이스이자 2019 시즌 세 번째 GP에서, 메르세데스 AMG F1팀의 루이스 해밀튼이 1시간 32분 6.35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2위는 팀메이트인 발테리 보타스(+6.552), 3위는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제바스티안 페텔(13.744)였다. 기록할 만한 이변은 나오지 않았으며 이로써 루이스 해밀튼이 중국 GP에서 도합 6회의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됐다.

묘하게 겹치는 인연의 중심,
레드불과 토로 로쏘

폴 포지션은 발테리 보타스가 가져갔다. 2019 시즌 자신의 첫 폴 포지션이었다. 해밀튼은 이에 약 0.02초 뒤져 2번 그리드를 차지하게 되었고, 제바스티안 페텔이 3번 그리드에서 출발했다. 결국 예선 성적이 그대로 반영된 셈이었다. 참고로 제바스티안 페텔은 레드불 레이싱 소속이던 2009년에 중국 GP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이에 레드불 레이싱은 SNS를 통해 10년만에 우승을 거둔 전 동료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냈다. 레드불도 이 날 막스 페르스타펜이 4위, 피에르 가슬리가 6위에 올라 챔피언십 포인트를 획득했다.


‘어우해’로 끝난 1000번째 F1 레이스, 중국 GP의 이모저모
표정으로 ‘어차피 우승은 해밀튼’을 말하는 루이스 해밀튼(왼쪽), 2019 시즌 첫 폴 포지션에서 출발한 발테리 보타스(가운데), 3위로 포디움에 오른 제바스티안 페텔(오른쪽)

전반적으로 상위권에서 큰 이변은 없는 레이스였으나, 1랩에서는 사고가 있었다. 2019 시즌, 레드불 레이싱의 주니어 팀인 토로 로쏘로 F1 머신의 시트를 다시 차지한 다닐 크비얏(11그리드 출발)이 맥라렌의 듀오인 카를로스 사인츠(14 그리드 출발, 이하 ‘사인츠’), 란도 노리스(15 그리드 출발)와 충돌했다. 6번 코너에서 다음 코너로 진입하는 라인을 빨리 장악하려던 다닐 크비얏의 머신 왼쪽 전륜이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의 우측과 충돌하면서 말 그대로 사인츠의 머신을 ‘던져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란도 노리스의 머신은 크비얏의 왼쪽 후륜과 충돌했으나 주행을 이어갔다. 큰 충격을 입었지만 경험을 갖춘 사인츠가 분전을 통해 55랩으로 완주했다. 그러나 노리스는 50랩에서 리타이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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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렌의 머신. 1랩에 사고가 일어나리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인츠는 “그랑프리는 평균 55~56랩을 달려야 하는 장거리 레이스”라며 “크비얏은 이런 장거리 레이스의 1랩에서 인내심을 발휘했어야 한다”고, 한 때 토로 로쏘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크비얏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공교롭게도 크비얏은 3년 전인 2016년 중국 GP에서 제바스티안 페텔과 1라운드에서 충돌 사고를 일으킨 바 있다. 이 때 베텔은 그를 향해 ‘어뢰(torpedo)’라 부르며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바로 그 중국 GP에서 같은 사고를 일으킨 크비얏 역시 41랩에서 결국 리타이어했다. 전체 F1 역사의 1/4에 해당하는 250번째 GP 출전을 기록한 토로 로쏘는 크비얏으로 인해 웃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그나마 태국계 영국인인 신예 드라이버 알렉산더 알본이 10위에 랭크되었다는 것이 위안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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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에 랭크된 토로 로쏘의 알렉산더 알본

대동소이한 타이어 선택,
승부는 디테일

2019 중국 GP 역시 승부의 관건은 타이어 운용의 묘였다. 2018 시즌 형형색색으로 분류된 타이어 컴파운드 종류 표시는 흰색의 하드, 노란색의 미디엄, 붉은색의 소프트 3가지로 심플하게 축약되었고, 선수들은 이 선택지 안에서 최선의 답을 찾아내야 했다. 이 날 상하이의 낮 기온은 19℃였으나 때때로 흐렸고 습도가 60%대로 높은 편이었다.

우승자인 해밀튼은 22랩에서 흰색의 하드 컴파운드 타이어로 교체한 후 36랩째에 두 번째로 피트인하여 미디엄 타이어로 교체했다. 그러나 이 타이어도 사용하던 타이어였으므로 실제로는 두 세트의 타이어로만 주행해 승리한 셈이다. 2위를 차지한 보타스의 경우는 첫 번째 타이어 교체 시기는 21랩으로 역시 하드 타이어를 선택했으며, 36랩에 피트인하여 다시 미디엄 타이어로 교체했다. 해밀튼과는 달리 사용한 타이어가 아닌 새 타이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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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시 미디엄 타이어를 장착한 해밀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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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컴파운드의 타이어를 장착한 해밀튼

한 타이어로 오래 버틴 드라이버는 르노의 다니엘 리카르도로, 그는 18랩에 피트인해 하드 컴파운드 타이어로 교체한 뒤 37랩을 주행했다. 이 외에 미디엄 타이어로 가장 오래 탄 드라이버는 윌리엄스의 로버트 쿠비카, 소프트 컴파운드 타이어로 가장 오래 탄 드라이버는 가슬리, 알본, 사인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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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컴파운드 타이어로 가장 오래 달린 세 선수 중 하나인 레드불 레이싱의 피에르 가슬리

참고로 F1에 타이어를 공급하고 있는 피렐리는 지난 해 말, 공급 계약을 2023년까지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DTM 등 주요 모터스포츠 종목에 타이어를 공급하고 있던 한국 타이어의 F1 진입 시도가 실패한 순간이기도 했다.

다시 돌아온 시청자,
젊은층 유입은 과제

2018년, F1은 공식 채널을 통해 TV 중계 시청 인구가 전세계적으로 3억 9,000만 명 수준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도 대비 4,000만 명이 증가한 수치다. 한 팀의 독식으로 흥미가 반감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확실한 흥행을 보장하는 슈퍼스타 루이스 해밀튼의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
그러나 F1은 또다른 고민을 토로한 바 있다. 2018년, 25세 이하 시청자들이 14%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미디어 채널을 활용해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고는 있으나 아직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다. 전세계적으로 젊은이들의 소득이 줄어들고 있고 향후 경제적 성장에 따른 기대감이 줄어드는 현재, 과거 세대만큼 자동차가 주는 로망을 즐길 여유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F1으로서는 재진입한 관람객층을 지속해 잡고 보다 젊은 세대를 향한 구애를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복수의 과제를 안고 있다.

“평범한 드라이버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독일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미하엘 슈마허의 말이다. F1은 평범을 거부하고 인간의 한계를 향해 달리는 이들의 도전이자 스포츠의 순수한 열망과 기계 문명이 첨단에서 만나는 종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말은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F1의 1000번째 레이스인 중국 GP는 과연 F1이 향후에도, 평범을 거부하고자 하는 이들의 대리 만족을 가능케 해 줄 흥분되는 스포츠로 남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하는 경기였다.

한명륜 기자